◇나무신화/도리스 라우데르트 지음·이선 옮김/708쪽·3만8000원·수류산방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터키 에페소스는 숲을 훼손한 결과 사라진 도시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에페소스에서는 농업이 번성하자 숲을 농경지대로 바꿨다. 숲이 축소되자 물이 줄었고 토양 침식도 가속화되며 도시는 사라졌다. 나무를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로 여긴 동양과 달리, 문명 발전을 중시한 서양은 자연을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35종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특히 나무에 얽힌 신화와 전설, 역사, 민속에 대한 설명은 유럽 문명도 자연에서 출발했으며 숲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리스 아테네, 마라톤 등 지역을 아우르는 아티카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아테네 초대 왕 케크롭스는 도시에 더 이로운 선물을 주는 신을 수호신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포세이돈은 소금물과 항구를 선물했지만, 아테나는 도시에 올리브나무를 싹틔웠다. 케크롭스는 식량이자 약재인 올리브나무의 가치를 알아보고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정한다. 이후 올리브나무를 훼손한 자는 재산을 뺏기고 추방당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가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는 말을 남겼다. 나무와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들려주는 이 책은 문명 발전으로 숲이 사라져가는 오늘날에 경종을 울린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