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조영관씨(65)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에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가기 위해 점자 보도블록이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아파트 단재 내 길에는시각장애인을 위한 별다른 이 정표가 없어 조씨는 하수도 덮개에 의존해 길을 찾았다. 2021.12.30/뉴스1 © News1
2년 동안 이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한 조씨는 대략적인 위치는 몸으로 익혔다고 말했지만 단지를 빠져나가는 10여분 동안 여러번 위기에 봉착했다. 앞으로 직진만 하면 되는 길이었지만 전맹인 조씨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향이 맞지 않아 길가의 화단으로 발을 들여놓을 뻔하기도 했고 도로 턱에 걸려 여러번 발을 삐끗했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이 아파트 단지 사잇길은 과거엔 이렇게까지 험난하지 않았다. 재건축 이전 주공아파트가 있던 시절에는 단지 내 도로에도 점자 보도블록이 있었어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지하철역 바로 인근에 있어 이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오는 많은 시각장애인들도 이 점자블록을 타고 복지관으로 향했다.
재건축 전 주공아파트 시절부터 20여년간 이곳에서 살면서 복지관을 이용해온 조씨는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면 점자블록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해왔다. 그래서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9년 재건축 조합을 직접 찾아가 시각장애인 점자블록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고 ‘알았다’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조씨는 당시 알았다는 조합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회고했다.
시각장애인 조영관씨가 30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에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가기 위해 점자 보도블록이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원래 조씨의 자택에서 복지관으로 가는 길에는 점자 보도블록이 있었지만 아파트 재건축 이후 점자 보도블록이 사라졌다. 2021.12.30/뉴스1 © News1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길에 점자블록이 사라지자 복지관을 찾던 시각장애인들을 아파트 단지를 둘러 나 있는 큰길을 따라 복지관으로 향해야 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를 때보다 3배 가까이 먼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게 된 조씨에게는 삶 자체가 불편해졌다. 그는 “처음에는 여기 들어와서 방향을 못 잡으니 엉뚱한 곳으로 가게 돼서 황당했다”라며 “길을 찾기 위해서 40~50번 정도 혼자 걸으면서 시도를 해봐야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낮에 거리에 나가서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오후 10시 이후 밤늦은 시간에 집 밖으로 나가 길 찾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복지관 앞에 시각장애인들이 위치를 찾을 수 있게 알람이 울리던 장치가 있었는데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어 알람 소리를 줄이게 돼 위치를 찾기 어려워졌다”라며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에 대해 좀 더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점자블록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자 조씨는 장애인단체의 도움을 얻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넣었다. 주택조합, 건설사, 관할 자치구가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고려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씨의 인권위 진정을 도운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법으로 강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민간이 짓는 아파트 단지 대부분에는 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차별금지법 등의 개정을 통해서 법적인 토대가 만들어져야 지금 같은 상황이 개선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