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부터 軍시설 들어서며 통제 작년 산 관리권 지자체로 넘어오며 軍과 정상 일부 면적 개방 합의 새해 첫날 임시 개방… 4월 상시개방
1일 오전 임시 개방된 부산 해운대구 장산 정상. 홍순헌 해운대구청장과 구에서 초청한 주민대표 등 약 50명이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고 있다. 장산 정상은 군사시설이 설치돼 100년 넘게 통제됐다. 4월부터 일반에 상시 개방한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50년 넘게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꼭대기는 처음 와 봐요. 군 보안시설이었거든요.”
1일 오전 7시 해발 634m의 부산 해운대구 장산(장山) 정상. 전우양 씨(85)는 표석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서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말했다. 발아래 빽빽하게 들어선 80층 높이의 마린시티가 한눈에 들어왔고, 멀리 일본 쓰시마섬(對馬島) 능선도 보였다.
전 씨는 해발 550m 지점에 조성된 장산마을에 산다. 정부의 ‘장산개척단 사업’에 따라 1967년 이곳으로 이주한 초기 주민이다. 그는 임야를 밭으로 일궈 고랭지 채소를 키우며 살아왔다. 산 정상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금단(禁斷)의 영역이었다. 전 씨는 “초기 이주민은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혼자 남았다. 좀 더 일찍 개방됐더라면 함께 좋은 풍경을 봤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단절된 공간을 시민 품으로 돌리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2011년 해운대구 주민단체와 환경단체가 시민운동을 추진하면서다. 지난해 9월 장산이 ‘해운대구 구립공원’으로 지정돼 정상을 포함한 산 전체 관리권이 해운대구로 넘어오면서 정상 개방은 탄력을 받았다. 해운대구는 지난해 12월 군과 정상 개방에 관한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임인년(壬寅年) 첫날 장산 정상을 디딘 이들은 약 50명.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을 비롯한 구청 관계자와 전 씨 등 주민 대표 등이 함께 자리했다. 해운대구에서 방역을 감안해 초청 인원을 제한한 것이다.
이날 진행된 ‘장산 정상 개방식’에서는 ‘범 내려온다’ 등 사전 국악공연이 흥을 돋웠다. 이어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참석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동백섬 등 해운대구 18곳에서 떠온 흙을 정상에 뿌리며 화합을 염원하기도 했다. 해운대구 우동의 한 주민은 “내가 알기로는 대한민국 산 중 정상이 가로막힌 유일한 곳이 여기였다”며 “미지의 공간에서 새해를 맞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장산 정상은 이날 하루만 임시 개방됐으며 상시 개방은 4월부터다. 약 1500m² 정상부 면적 중 일반인이 디딜 수 있는 곳은 640m² 정도. 나머지는 군과 이동통신사의 통신시설이 있어 접근 금지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