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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미지의 땅, 해운대 장산 정상서 맞는 일출

입력 | 2022-01-03 03:00:00

일제때부터 軍시설 들어서며 통제
작년 산 관리권 지자체로 넘어오며 軍과 정상 일부 면적 개방 합의
새해 첫날 임시 개방… 4월 상시개방



1일 오전 임시 개방된 부산 해운대구 장산 정상. 홍순헌 해운대구청장과 구에서 초청한 주민대표 등 약 50명이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고 있다. 장산 정상은 군사시설이 설치돼 100년 넘게 통제됐다. 4월부터 일반에 상시 개방한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50년 넘게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꼭대기는 처음 와 봐요. 군 보안시설이었거든요.”

1일 오전 7시 해발 634m의 부산 해운대구 장산(장山) 정상. 전우양 씨(85)는 표석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서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말했다. 발아래 빽빽하게 들어선 80층 높이의 마린시티가 한눈에 들어왔고, 멀리 일본 쓰시마섬(對馬島) 능선도 보였다.

전 씨는 해발 550m 지점에 조성된 장산마을에 산다. 정부의 ‘장산개척단 사업’에 따라 1967년 이곳으로 이주한 초기 주민이다. 그는 임야를 밭으로 일궈 고랭지 채소를 키우며 살아왔다. 산 정상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웠지만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금단(禁斷)의 영역이었다. 전 씨는 “초기 이주민은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혼자 남았다. 좀 더 일찍 개방됐더라면 함께 좋은 풍경을 봤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장산 정상은 6·25전쟁을 겪으며 설치된 군의 통신시설 때문에 7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통제 기간은 100년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정진택 해운대문화원 사무국장은 “일제에 국권이 상실된 1910년부터 정상엔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무선을 청취하는 군사시설이 설치됐다. 그 이전에는 장산 일대가 나무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돼 드나들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단절된 공간을 시민 품으로 돌리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2011년 해운대구 주민단체와 환경단체가 시민운동을 추진하면서다. 지난해 9월 장산이 ‘해운대구 구립공원’으로 지정돼 정상을 포함한 산 전체 관리권이 해운대구로 넘어오면서 정상 개방은 탄력을 받았다. 해운대구는 지난해 12월 군과 정상 개방에 관한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임인년(壬寅年) 첫날 장산 정상을 디딘 이들은 약 50명.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을 비롯한 구청 관계자와 전 씨 등 주민 대표 등이 함께 자리했다. 해운대구에서 방역을 감안해 초청 인원을 제한한 것이다.

이날 진행된 ‘장산 정상 개방식’에서는 ‘범 내려온다’ 등 사전 국악공연이 흥을 돋웠다. 이어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참석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동백섬 등 해운대구 18곳에서 떠온 흙을 정상에 뿌리며 화합을 염원하기도 했다. 해운대구 우동의 한 주민은 “내가 알기로는 대한민국 산 중 정상이 가로막힌 유일한 곳이 여기였다”며 “미지의 공간에서 새해를 맞으니 감회가 새롭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장산 정상은 이날 하루만 임시 개방됐으며 상시 개방은 4월부터다. 약 1500m² 정상부 면적 중 일반인이 디딜 수 있는 곳은 640m² 정도. 나머지는 군과 이동통신사의 통신시설이 있어 접근 금지다.

해운대구는 5억 원을 들여 군 시설 가림막을 세우고 화장실과 안전펜스도 설치한다. 홍 구청장은 “6·25 때 만들어진 미군 벙커시설을 허물지 않고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며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장산국(장山國)’에 대한 사료도 더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