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새해 대미·대남 메시지 침묵 코로나 위기 속 내부 결집에 집중 ‘국방 계획 확대’ 核고도화 의지 표명 南대선 끝난 4월 긴장 조성 나설 수도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북한이다. 허를 찌르는 데에 능숙하다. 한국 정부를 포함하여 국내외 전문가 다수가 2021년 말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4차 전원회의에서 대미·대남 정책을 포함한 대외전략을 밝힐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북한은 “북남관계와 대외사업 부분”에서 “원칙적 문제와 전술적 방향을 논의했다”는 짧은 문장으로 가름했다.
북한이 대남·대미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고 사실상 침묵한 것은 여러 해석을 가능케 한다. 우선 코로나19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비상방역사업을 국가사업의 제1순위로 놓고 사소한 해이나 빈틈, 허점도 없이 강력하게 전개해 나가야 할 최중대사”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전염병은 국가 보건 차원이 아닌 김정은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다수의 북한 급변사태 연구는 북한 체제의 내구성을 인정하지만, 전염병이 경제난과 합쳐지면 민중 봉기가 발생하여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도 제시한다. 따라서 북한은 전력을 다해 코로나가 통제될 때까지 내부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가장 강조된 “사회주의 농촌 문제의 해결”은 코로나를 버티기 위한 식량 확보 노력이다.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여 북한이 원하는 제재 일부 해제를 쟁취하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것도 침묵에 셈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작년 9월 25일 김여정이 처음 밝힌 “이중 기준 철회”를 대미 및 대남 요구에 덧붙였다. 북한은 이중 기준을 “자기들의 유사 행동은 평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고 우리의 행동은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묘사하는 비논리적이고 관습적인 우매한 태도”라고 정의한다. 이 논리를 수용하면 북한이 시도하는 불법 핵·미사일 개발에 문제 제기가 불가하므로 결국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이번 회의에서 핵·전략무기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선반도의 군사적 환경”을 이유로 지난 8차 당 대회 때 결정된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계속 확대”한다고 밝힌 것은 전략·전술 핵무기 개발을 지속한다는 의지 표명이다.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의 보수화, 급진화 성향이 재차 확인된다. 북한은 2018년 4월 경제 및 핵병진 노선을 “결속”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으로 전환을 선포한 후 세계무대로 진출했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다시금 예전으로 환원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비사회주의·반사회주의 척결 운동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어김없이 반복되고 “법 기관들의 역할”을 높이고 “사회주의 법률제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재천명되었다. 가장 큰 비중으로 다뤄진 농업 분야에선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하는 개혁 조치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국가 중심성에 기반한 집단주의를 드러낸다.
북한은 결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급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서는 선택”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것이다. 북한은 적대시 정책과 이중 기준 철회를 압박하여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때까지 최대한 버틸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한국 대선과 한미 연합훈련 등이 실시되는 3월 후 김일성 탄생 110주년, 북한군 창건 90주년 등이 몰려 있는 4월에 한반도 긴장을 극도로 조성하는 벼랑 끝 전술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정권이 추진하는 노선을 제대로 읽는다면 현 대북정책을 중단하고 다음 정부가 제대로 된 검토 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 그리고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지적했듯이 한국이 매우 부족한 “전략 타격 및 통합 미사일 방어 능력 향상”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