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몽진하자 전국의 백성들이 충격을 받았다. 정확한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대부 중에도 선조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이 꽤 있었거나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시 선조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사대부였던 오희문은 “선조는 큰 잘못이 없는 열심히 일한 임금이었는데, 왜 이런 재난이 생겼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만의 생각이었을까?
선조가 백성에게 내린 교서가 있다. 치열한 자기반성과 사죄로 가득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백성들을 탓한다. 물론 몇 가지 사소한 잘못은 인정을 한다. 그러나 더 크게 꾸짖는다. “외적이 들어와 강토를 휩쓰는데, 싸우지 않고 숨고 도망치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식이다.
우리는 백성들의 생각도 들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기록이 전무해서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건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대한 민심 이반이나 이런 주장에 대한 물리적 항거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정말 궁금하다. 양심이 부족했던 것일까? 지식이 부족했던 것일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오면 한두 가지 제도만 바꾸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는 식의 무책임한 진단을 하거나 마녀사냥으로 해결한다. 아니면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더 셌다라는 식의 정신적 위안에 집착한다.
신년 벽두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꺼려지지만, 산을 넘어야 새 땅을 만날 수 있다. 뻔뻔한 권력, 무책임한 지성, 선동하고 선동당하는 사람들…. 2022년은 이 악의 고리를 깨고 일어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