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여행을 통해 변화하는 전후 일본의 가족 관계와 인생 문제들을 담담히 그려낸 ‘동경이야기’(1953년)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걸작으로 꼽히며 세계 영화사에서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2012년 영국영화연구소(BFI)에서 발간하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 잡지 역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감독들이 1위로 선정했다.
오노미치에 살고 있는 노부부 슈키치(류 지슈)와 도미(히가시야마 지에코)가 출가해서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 보러 여행을 간다. 기차 타고 꼬박 하룻밤과 반나절이 걸리는데 중간에 오사카 역에서 막내 아들 게이조(오사카 시로)가 잠깐 나올 정도로 그들한테는 드문 여행이다. 도쿄 변두리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장남 고이치(야마무라 소)의 집과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녀 시게(스기무라 하루코)의 집에 차례대로 묵는다. 둘은 각자 일이 있어 부모님이 부담스러운 입장들이다.
그 대신 몇 년 전 2차대전에서 죽은 둘째 아들의 아내인 며느리 노리코(하라 세쓰코)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휴가를 내서 도쿄 구경을 시켜준다. 작은 방에 살고 있지만 집에서 저녁도 대접한다. 계속 바쁜 고이치와 시게는 돈을 모아 부모님을 아타미 온천 여행을 보내는데, 밤에 시끌벅적한 여관에서 잠을 못 이룬 부부는 일찍 돌아온다. 시게는 사실 집에서 하는 모임 때문에 방이 필요했던 터, 노부부는 짐을 싸서 공원에 나간다. 도미는 노리코네서 자고 슈키치는 옛 친구와 술 한잔 하다가 그 집에 묵을 태세로 나선다.
나중에 도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막내딸 교코(가가와 교코)가 언니와 오빠들의 태도에 불만을 갖지만, 그녀는 다른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사람이다. 여행 때 그리고 장례 때 혈육보다 잘 챙겨줬다는 며느리 노리코는 각자의 삶이 생기면 다 변해 가는 것이라 말해 주기도 한다.
영화는 큰 반전 없이 흘러가지만, 각자 보는 사람의 입장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층과 겹을 볼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새해에 또 세월이 흐르는 중, 한번 곱씹어 볼 만한 영화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