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TSMC 등 대규모 시설투자… 반도체 활용 산업도 갈수록 확대 인력수요 급증하는데 공급 부족… 인터넷-SW분야에 학생 뺏긴 탓 美, 해외인력 채용 지원 법안 추진… 日, 고등전문학교에 교육과정 신설
“우리는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각국이 반도체 생산을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선 가운데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ASML의 짐 쿤먼 수석부사장은 인재난을 겪고 있다며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렇게 말했다. 최근 수년간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 산업이 주목을 받고,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서 인력 공급이 줄어든 탓이다. 여기에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망 재편, 신산업 등장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 등이 겹쳐 인력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WSJ “글로벌 반도체 인력난 심각”
WSJ는 2일 반도체 기업들이 공격적인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서면서도 인력난에 고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 인텔은 1000억 달러(약 119조 원)를 투자해 미국과 유럽에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TSMC는 지난해부터 3년간 매년 280억 달러(약 33조4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도 올 상반기 미국 텍사스주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도 지난해 8월 2만7700명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44%나 늘어난 수치다. 중국에선 최근 5년간 반도체 업계 종사자가 2배로 늘었지만 여전히 25만 명의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WSJ는 “반도체 산업은 생산 자동화 수준이 다른 산업보다 높긴 했지만 시설 운영을 위한 기본 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인력 수급에 불균형이 생긴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산업 트렌드의 변화다. 수년 전부터 소프트웨어나 인터넷 기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크게 늘어난 반면 반도체 등 제조업 관련 전공을 택하는 학생들이 줄면서 세계적으로 인력 배출이 줄어든 것이다. 미국 뉴욕의 로체스터공대(RIT)의 경우 학부 과정의 전자공학 전공 학생이 1980년대 중반 50명에서 최근 1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산토시 쿠리네크 RIT 교수는 “이제 학생들은 구글용 앱을 만들거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산업 영역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노트북, TV 등 전자기기 수요는 늘고 있다. 세계적 신용보험사인 오일러헤르메스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약 9% 증가해 6000억 달러(약 715조8000억 원)를 처음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판매량은 전년보다 26% 늘어난 약 5530억 달러(약 659조 원)였다.
산업 전반에서 자동화 등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메타버스 등 신기술이 등장한 것도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전기차 배터리 등 산업 간 인력 쟁탈도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미일 등 학계와 손잡고 인력 확보 총력전
각국 업체들은 산학협력을 통해 인력을 키우고 해외 인재들을 빼오는 ‘투트랙’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해외 인력 채용을 용이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회를 설득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전문 인력 조기 육성에 나섰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르면 올해부터 구마모토, 후쿠오카 등 규슈(九州) 지역 8개 고등전문학교(중학교 졸업 후에 진학하는 5년제 교육기관)에 반도체 제조와 개발에 관한 교육과정을 신설할 계획이다.
대만은 지난해 5월 첨단기술 분야에서 산학협력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TSMC 류더인 회장은 “업계와 대학의 협력은 향후 10년간 대만 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