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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성폭력 피해 아동, 법정서 유죄 입증할판”…판사들 대책 마련 나선다

입력 | 2022-01-05 11:23:00

전문가 “유죄 입증의 짐은 아동이 다 지게 돼”



동아일보DB


성폭력 피해 아동의 영상 녹화 진술을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자 법원 판사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나섰다. 헌재 결정으로 “피해 아동이 유죄 입증의 모든 짐을 지게 됐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법원 내 연구회인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는 10일 오후 7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 녹화 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 긴급토론회를 연다.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아동) 부소장, 조현주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김동현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판사, 오선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 조정민 부산지법 판사 등이 참가한다.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초기 진술과 증거 수집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에는 아동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경우 해바라기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전문 상담사가 피해 아동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킨 뒤 피해 내용을 진술하는 과정을 촬영해 법원에 제출하면 재판에서 핵심 증거로 사용됐다. 하지만 헌재 결정으로 영상 녹화 진술의 증거능력이 없어져 초기에 영상으로 증거를 수집할 이유가 떨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피고인이 수사기록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가 어린 피해 아동이라도 법정에 소환해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된 피해 아동에 대한 증인 신문은 시간이 짧을 뿐더러 재판부나 검찰 측이 아동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면서 질문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정 증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해자 지원 센터에서의 영상 녹화 진술을 도입했는데, 이제는 영상을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하니 수사 단계에서 영상 녹화 진술을 확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벌써 발견되고 있다”며 “피해 아동의 기억이 살아있을 때 날것 그대로의 영상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결국 피해 아동이 스스로 유죄를 입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영상 녹화 진술이 없으니 피해 아동을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할 수밖에 없다. 피고인석에 앉은 가해자와 마주친 피해 아동이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순간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피고인 측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 “형사사법체계에서 국가가 수사권과 형벌권을 가지는 이유는 피해자가 스스로 ‘사적 구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인데 형사사법체계와도 맞지 않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의 내용에 대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게 된 점도 피해 아동을 더욱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진술했던 내용도 증거로 쓸 수 없고, 피해 아동의 영상 녹화 진술도 증거로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은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증인으로 소환된 피해 아동을 위축시켜 증언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한다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10일 토론회에서는 패널들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 특성, 헌재 결정의 의미,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실무상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