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90년 만에 내수 시장 1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일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차지했다. 도요타의 약진은 시장의 추세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공급망 위기에도 적극 대처해 온 덕분으로 분석되고 있다.
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모두 233만2000대를 팔아 판매량을 전년 대비 10.4% 늘렸다고 이날 밝혔다. 반면 GM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12.9% 급감한 221만8000대에 그쳤다. GM은 1931년 포드 자동차를 제치고 미국 시장 1위에 올라선 뒤 이후 그 자리를 지켜왔다. 미국 시장에서 외국계 자동차 기업이 판매량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승용차와 트럭 등 주요 차종의 판매량을 고르게 늘렸다.
반면 도요타는 차량용 반도체 칩의 공급난에 대비해 부품 수개월 치를 미리 확보해놓는 등 만반의 대비를 갖춰 상대적으로 피해를 줄였다. 도요타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자사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JIT) 생산 방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부품과 재고를 상시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JIT는 부품을 적기에 조달해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70여 년 동안 제품 생산의 원칙으로 지켜왔던 도요타는 대지진 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호된 시련을 겪었다. WSJ는 “도요타는 (만일에 대비해) 반도체 칩을 쌓아둔다는 결정으로 큰 이득을 봤다”면서 도요타가 작년 공급망 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헤쳐나갔다고 보도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한 발 먼저 내다본 것도 주효했다. 다른 자동차 기업들은 2020년 봄 팬데믹의 발발로 판매량이 감소하자 저마다 반도체 등 부품 주문을 줄였다. 하지만 도요타는 조만간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부품 공급을 최대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작년 상반기 다른 회사들이 공급망 위기로 큰 피해를 볼 때 도요타는 공장 가동률을 90% 이상 유지하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1965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도요타는 1988년 켄터키주에 첫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도요타는 GM과 포드, 크라이슬라가 휘청거릴 때 좋은 품질을 앞세워 평판을 쌓았다”며 “도요타의 성장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을 촉발시켰고 ‘이러다가 일본 회사가 미국 회사를 끝장낼 수 있다’는 대중의 공포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GM 측은 “작년에는 대형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집중했다”면서 “올해 반도체 공급난이 잦아들면 판매량은 다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공급망 위기에 시달려 온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들어 반도체 기업과의 제휴나 자체 부품 생산 등을 통해 위기 탈출을 도모하고 있다.
도요타 외에 현대자동차 등 다른 외국계 자동차회사들도 지난해 좋은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73만8081대를 팔아서 전년보다 판매량이 19% 급증했다. 일본 혼다도 판매량이 147만 대로 전년보다 8.9% 증가했다. 이밖에 폭스바겐, BMW 등도 작년에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으로 리서치회사 콕스오토모티브가 추정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