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중 겨울방학동안 아이와 함께 할 일 중 ‘독서’를 꼽는 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동영상 매체에 익숙한 세대로 자라나며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아서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데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가장 어려운 건 국어 영역’이라는 말도 나온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 국어 영역 만점자 비율은 0.006%(28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방학 때 독서, 논술, 국어 학원이 붐비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근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의 독서 교육법이 관심을 모은다. 최 교수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직접 함께 한 독서 활동을 토대로 책 ‘초등 문해력을 키우는 엄마의 비밀’을 썼고, EBS 프로그램 ‘문해력 유치원’에 출연 중이다. 그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독서 활동 자료를 만들어 같이 독후 활동을 하면 문해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최 교수를 만나 자녀와 독서로 상호작용 하는 방법, 신문 기사를 연계해 독후 활동을 하는 방법 등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법을 물었다.
●책 읽고 관련 주제 다룬 신문 기사로 확장
최 교수가 초등학교 1~6학년 자녀가 있는 전국 학부모 136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밝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문을 활용한 부모 자녀 간 상호작용이 자녀의 성적 향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신문을 활용해 자녀와 색칠하기, 그림그리기 등 놀이를 하거나 기사를 스크랩하고 대화하는 상호작용이 자녀에게 읽기 동기를 부여하고, 결국은 성적도 향상 시킬 수 있다. 최 교수가 자녀와 많이 한 활동은 독서를 한 뒤 해당 책과 관련 있는 기사를 찾아 주제를 확장하고 모르는 단어 뜻을 유추해보는 것. 최 교수는 “기사 내용을 부모도 다 모를 수 있는데 아이와 함께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며 공부하면 된다”며 “부모를 모델로 삼아 자기주도학습을 해본 아이가 중학교에 가서도 공부를 잘 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는 우선 자녀에게 △라일라는 어떤 소녀인지 △내가 만약 라일라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써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사이버 폭력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연계하면 효과적이다. 최 교수는 201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청소년 사이버불링 실태조사’ 기사를 활용했다. 우선 기사를 읽고 모르는 낱말과 표현에 밑줄을 그어보게 했다. 2학년에게는 신문 기사가 어려우므로 △사이버불링 △실태 △유출 △가해 △애착 △신뢰 등 여러 단어에 줄이 그어졌다. 학부모는 자녀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뜻을 말해주고 예문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자녀가 기사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학생들이 친구에게 사이버 폭력을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우리 학교 학생들 간에 사이버 폭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면 효과적이다.
●고학년 되면 ‘글쓰기’도 함께 연습
최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는 책 ‘두 얼굴의 에너지, 원자력’(글 김성호, 길벗스쿨)을 사례로 제시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무조건 재미있는 책 위주로 읽었다면, 4학년부터는 비문학 책을 섞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원자력의 개념과 원자력 발전소의 작동 원리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에 찬성과 반대하는 주장을 균형 있게 다룬다. 가장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은 책에서 언급된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틀에 맞춰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아이는 이를 통해 기사의 육하원칙 작성법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 상황은 어떤지’ 등 책에 나온 내용을 찾아 요약해 보게 하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 한다. 책 내용의 핵심만 간단하게 요약하는 건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 교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생산비가 급증하고 한국전력이 적자를 기록했다는 내용의 2018년 기사를 아이에게 추가로 읽게 했다. 마지막으로 기사와 책의 내용을 활용해 ‘원자력의 미래와 우리의 선택’을 주제로 서론-본론-결론으로 이어지는 글의 개요를 짜보도록 했다. 최 교수는 “아이들이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으로 글을 한 문단 쓰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는데 이렇게 연습하면 논술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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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정말 책을 안 읽는데 어떡하나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를 하나만 잡아서 관련해 다채롭게 책을 골라보자. 방학이니 3, 4권 정도면 좋겠다. 축구를 좋아한다면 유명 축구 선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위기에 처한 구단 이야기 등으로 점점 난도를 높여 가면 된다. 관심이 생기면 아이들은 금방 책에 손을 뻗는다. 영화나 만화로도 만들어져 익숙한 책도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기에 좋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를 읽은 뒤 같이 집을 마술 테마로 꾸미고 재미난 먹을거리를 놓고 친구들을 불러 같이 놀 수도 있다.”
―책 읽는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까
“아이와 도서관 사서 놀이를 해보자. 집에 있는 책을 가나다순이나 작가별, 주제별, 장르별 등으로 정리해보는 거다. 어떤 책을 읽었고 안 읽었는지를 알 수 있다. 쓸데없는 책은 정리하고 필요한 책을 구비하면 된다. 전집은 추천하지 않는다. 책장에 똑같은 크기의 책을 수십 권 꽂아놓고 ‘오늘 1~5권까지 읽어’ 하는 식의 독서는 아이들을 지치게 한다. 집이 좀 지저분해져도 집안 곳곳 아이 눈과 손이 닿는 곳에 책을 두자. 아이에게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읽을 책은 어떻게 정하나
―아이와 주기적으로 책을 읽는 게 어려울 것 같다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생인 지금까지 하고 있는 ‘책 동아리’를 적극 추천한다. 우리 아이도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 친구들을 모아 시작했다. 2주에 한번씩 정해진 책을 읽고 와서 여러 독서 활동을 했다. 나는 같은 책을 읽고 활동지를 만들어줬다. 이건 부모님들이 한번씩 번갈아가며 해도 된다. 모든 책에 대해 요약이나 감상문 작성 등을 일률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핵심이 될 만한 활동 한두 가지만 한 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하고 놀이 시간을 보장해주자. 아이들도 모임 자체를 즐거워하고 주기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이 자리 잡힌다. 물론 책 동아리를 구성하지 않고 아이와 일대일로 해도 좋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