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월급으로 돈 모을 수 있을까요? 절대 못 해요. 서울은 집값 안 떨어집니다. 이번 기회 놓치면 앞으로 기회는 없을 겁니다.”
사회초년생인 박모 씨(24)는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강서구의 한 신축 오피스텔 모델하우스를 찾았다가 분양대행업체 직원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직원은 “몇 개 없는 귀한 매물이다. 2022년부터 대출이 줄면 투자 못 한다”며 박 씨를 4시간 가까이 설득했다. 애당초 상담만 받으려 했던 박 씨는 결국 전용면적 52㎡ 오피스텔 한 채를 계약하기로 했다. 계약금은 분양가 9억 원의 10%인 9000만 원이었지만 박 씨 수중엔 그만한 돈이 없었다. 업체 측에선 1500만 원을 입금하면 나머지는 대출을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박 씨는 1500만 원을 입금했다.
다음 날 생각이 바뀐 박 씨는 계약을 취소하고자 했지만 업체 측은 나머지 계약금 7500만 원도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박 씨는 전날 보낸 1500만 원을 포기할 테니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지만 업체 측은 이미 계약을 했으므로 그마저도 안 된다고 했다. 박 씨는 꼼짝없이 나머지 금액을 납입하고 분양을 받거나, 1500만 원에 추가로 나머지 계약금 7500만 원까지 보낸 뒤, 계약금 9000만 원을 모두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본인은 ‘가계약’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더라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면 법적으로 계약이 성립하기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받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법무법인 ‘자연수’의 이현성 변호사는 “계약을 하면 법률행위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섣부른 계약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구매나 분양 계약 전 주변 시세나 동향에 대해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