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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사진’ 대가가 담은 창문 너머 도시의 삶

입력 | 2022-01-06 03:00:00

사울 레이터 삶 비춘 다큐 상영
사진-그림 200여점 전시회도 “세상 모든 것은 찍힐 만하죠”



눈 내리는 1950년대 미국 뉴욕의 길거리를 담은 ‘무제’(1950년대). 흐릿한 화면과 온화한 색조로 당시 뉴욕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피크닉 제공


“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에요.”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오래된 작업실을 둔 노년의 사진가. 그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그저 누군가의 창문을 찍죠. 그게 뭐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울 레이터(1923∼2013)는 ‘거리 사진의 대가’라 불린다. 지난해 12월 2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2013년)는 그의 꾸밈없는 삶을 비춘다. 다큐 속 그는 시답지 않은 듯 자신을 소개하지만, 이는 겸손이다.

화면 속 그는 영락없는 옆집 할아버지다. 산책하며 동네를 관찰하고 어린아이들을 보며 웃음을 보인다. 눈에 띄는 건 항상 그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삶은 레이터가 꿈꿔온 삶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잊혀지길 바란다”고 밝힐 만큼 세속적 성공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1953년 뉴욕현대미술관이 그의 몇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지만, 작가 스스로 필름 박스를 아파트에 쌓아 둔 채 상당수 작품을 인화조차 하지 않았다. 레이터가 예술가로서 대중에 알려진 것도 80대였던 2000년대 중반, 출판계 거장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이 그의 사진을 모아 출간하면서부터다.

레이터의 작품을 보면 묻혀진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에선 그의 흑백·컬러 사진과 회화 작품 등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여러 사상과 담론이 격돌하던 1940년대 뉴욕, 그는 어떤 사조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사진에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도시 풍경 뒤에 스며들어 관조하길 즐겼다. 덮개 안쪽에서 본 뉴욕 길거리 사진 ‘캐노피’(1958년), 창문 밖 행인을 담은 ‘모자’(1960년) 등 작가는 멀찍이 시선을 둔다. 눈보라 속을 걷는 사람을 찍은 ‘무제’(1950년대)나 ‘빨간 우산’(1958년)에서 볼 수 있듯 비나 안개, 눈을 시선의 창 삼아 그 너머의 무언가를 담아내려 했다.

그의 사진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영화 ‘캐롤’의 감독 토드 헤인스는 “이 영화는 레이터의 오마주”라 고백했고, 실제 자동차 차창이나 상점의 쇼윈도를 이용해 장면을 촬영했다. ‘은둔의 사진가’였지만 드러나지 않은 시간만큼 깊은 흔적을 남긴 노년의 예술가는 사진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세상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힐 만해요. 사진의 좋은 점은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겁니다. 온갖 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죠.” 3월 27일까지. 1만5000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