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차량용 반도체칩을 만드는 일본 르네사스 공장에서 불이 났다. 자동차 주행을 제어하는 데 쓰는 ‘마이콘’ 반도체 생산라인의 피해가 특히 컸다. 이 사고로 전 세계 자동차 반도체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북미지역 생산량을 대폭 줄여야 했다. 반면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부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되레 매출 신장을 이뤘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지난해 GM이 판매량 1위 자리를 도요타에 내줬다. 도요타 판매량이 233만2000대로 GM보다 11만4000대 많았던 것이다. GM은 작년 반도체 공급난으로 판매량이 12.9% 급감했지만 코롤라와 캠리 판매 실적이 좋았던 도요타의 전체 매출은 10.4% 증가했다. GM은 “이익 극대화에 치중했다”는 반응이지만 1931년 포드를 꺾은 뒤 지켜온 미국 차 시장 왕좌의 주인이 90년 만에 바뀐 의미는 작지 않다.
▷도요타의 약진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며 현장에서 먹히는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원래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만드는 적기(Just-in-time·JIT) 생산방식은 도요타를 상징하는 가치였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르네사스 공장이 처음 멈췄을 때 도요타는 생각을 바꿨다. JIT만 고집하면 공급망의 아랫단에서 생긴 크고 작은 문제가 전체 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의 재고 비중을 크게 늘리는 한편으로 공급망을 서부 일본이나 해외로 분산했고 이 전략이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개별 기업이 발 빠르게 대응한다고 해도 복잡하게 얽힌 공급 사슬망 속에서 혼자 힘으로만 경쟁사를 압도하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고 실적을 낸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체 설계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내재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가 없는 국내에서 기존 반도체 수급체계를 뒤집는 일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정해진 틀에 머물지 말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도요타 웨이’가 힌트가 될 수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