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文 대통령 성장률 자랑 이념형 경제정책 실패 못 덮어
박중현 논설위원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 공무원들이 선진국 중 제일 먼저 통계를 낸다는 걸 간과한 게 화근이었다. 작년 1월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라고 자랑했다. 코로나19 충격이 반영된 2020년 성장률이 ―0.9%로 ‘K방역’에 힘입어 다른 나라보다 선방한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노르웨이 성장률이 예상보다 호전돼 ―0.8%로 한국을 앞섰다. 3.4%나 플러스 성장한 아일랜드도 등장했다. 이어 뉴질랜드(+1.0) 호주(―0.3) 터키(+1.8%)가 줄줄이 한국을 추월했다. 결국 한국은 OECD 38개 회원국 중 리투아니아(―0.9%)와 함께 공동 6위로 밀렸다. OECD 회원국이 아닌 중국(+2.2%) 대만(+3.1%)이 빠진 순위가 이랬다. 사정을 훤히 알아도 대통령 말실수에 소금을 뿌릴 수 없는 기획재정부는 작년 말 현 정부 4년 반 경제성과를 자평하면서 2020년 성장률을 ‘G20(주요 20개국) 중 3위’라고 슬쩍 바꿨다. 그런데 이 또한 중국, 터키, 호주에 이은 4위가 진실이다.
이달 3일 임기 중 마지막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 “위기와 격변 속에서 우리 경제는 더욱 강한 경제로 거듭났습니다.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라고 했다. 작년 성장률 4.0%는 미국(5.6%) 유로존(5.2%) 중국(8.0%)보다 낮지만 마이너스 폭이 작았던 재작년과 합해 평균하면 순위가 높아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OECD, G20 등 비교 대상이 뚜렷해 꼬투리 잡힐 말 대신 ‘선진국’이란 표현을 쓴 게 묘수다.
작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심경이 읽혔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정색하고 “한국은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 이런 성취를 부정하고 폄훼한다면 그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 차원을 넘어 국민이 이룬 성취를 폄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과 기업이 인내와 노력으로 일궈낸 경제성과는 당연히 깎아내려선 안 될 일이지만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까지 끼워 넣은 건 치사한 무임승차다.
현 정부는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 입국자 차단, 백신 조달의 타이밍을 놓쳐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세계 주요국 중 1위 집값 상승률로 국민 허리를 휘게 했다. 재작년 총선 직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은 ‘한국 포퓰리즘사(史)’에 길이 남을 것이다. 국민을 ‘월급 주는 자’와 ‘월급 받는 자’로 가르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일자리를 줄인 건 이념형 정책실험의 실패 사례로 경제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언젠가 재정 악화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태가 온다면 나랏빚 폭증에 본격 시동을 건 정부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성공한 경제 대통령’은 시간이 흐른 뒤 대다수 국민이 동의해야 얻을 평가다. 지금 ‘우리 정부 경제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강조해봐야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임기 말에야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이란 깨달음을 얻었다면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나가 외롭게 경제를 지켜온 기업들에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