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화천군의 제2 하나원 전경. 연간 2000명은 수용이 가능하지만 지난해 입소한 탈북민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새해 벽두부터 탈북 청년의 월북 소식이 화제가 됐다.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 등 집안의 큰 짐을 굳이 힘들게 밖에 내놓고 간 것으로 보아 정상은 아닌 듯 보인다. 어차피 한국 사회에 적응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전방 경계나 탈북민 관리 실패가 화두가 된다. 지난 10년간 북으로 최소 30명의 탈북민이 돌아갔지만, 가기 전에 막은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이 싫어서 뜨겠다는 탈북민은 막기 어렵다. 김정은도 못 막은 탈출을 한국 정부가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또 막아서도 안 된다.
언론에선 이번 월북의 동기가 생활고 때문이라며 정부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탈북민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나 늘 따라 나오는 말이다. 정작 탈북민 사회에선 지원액이 적은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불만이 크다. 요약하면 “탈북민 정착예산이란 명목을 내걸고 돈이 허튼 곳에 다 나간다”는 불만이 많다.
그런데 정부의 탈북민 수용 시스템은 매년 최소 3000명 이상 입국한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국내 입국 탈북민은 2006년 2000명을 넘고, 2009년 2914명이 입국해 정점을 찍었다. 입국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부랴부랴 각종 대책을 세웠다. 경기 안성시의 하나원을 대폭 증축하고 강원 화천군에 제2 하나원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5년 전 통일부 출입기자였을 때 관련 예산을 보니 제2 하나원에 계약직을 포함해 70여 명이 근무했고, 예산은 약 250억 원이 지출되고 있었다. 지금도 유지에 200억 원은 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 제2 하나원에 작년에 입소한 탈북민은 불과 수십 명이다. 수십 명이 몇 달 머무는 데 수백억 원이 나가는 것이다. 다 탈북민 관련 예산이다. 안성 하나원도 연간 3000명은 수용이 가능한데 거기도 텅텅 비었다. 작년에 입국한 탈북민 60명을 위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공무원이 월급을 받으며 종사한다.
어디 하나원뿐인가.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다는 남북하나재단을 통한 사업예산도 계속 늘어나 올해 532억 원이 책정됐다. 전국에 탈북민 정착을 돕는다는 하나센터도 25개나 되고 센터마다 10명 내외의 직원이 근무한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신규로 받은 탈북자가 한 명도 없는 하나센터도 많다.
이 모든 방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올해 탈북민 정착지원 예산이 956억 원으로 책정됐다. 적은 돈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는 탈북민이 3만 명도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매년 1인당 300만 원씩 나눠줘도 남는 돈이다. 하지만 1원도 혜택 받지 못하는 탈북민이 태반이다. 도대체 돈은 다 어디로 가는가.
이번에 월북한 청년은 정착 기간에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년에 2000명 넘게 올 때나 60명이 올 때나 탈북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예산은 2000명이 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탈북민이 대규모로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코로나를 계기로 북한은 국경에 전기철조망과 지뢰를 매설했고, 중국도 통과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철조망을 새로 깔고 폐쇄회로(CC)TV를 촘촘하게 설치하고 있다. 이젠 대량 탈북은 불가능하다.
매년 입국하는 탈북민을 수백 명으로 전제해 그들에게 혜택이 집중되면서도 슬림하게 운영되는 탈북민 정착지원제도로 개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팔아 돈은 누가 다 챙기냐”는 탈북민 사회의 불만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