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을 한국의 월트디즈니 같은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10여 년 전부터 입버릇처럼 주변에 이러한 포부를 말했다. 2015년 출간한 책 ‘플레이’에서도 ‘한국판 디즈니’에 대한 자신의 꿈을 드러냈다. 게임 개발사를 뛰어 넘어 전 세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김 창업자는 지난해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지만 물밑에서 인재 영입과 투자를 이어온 결과 ‘한국판 디즈니’를 향한 넥슨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넥슨은 6일 “미국의 영상 콘텐츠 제작사 ‘AGBO 스튜디오’에 4억 달러(약 4800억 원)의 전략적 투자를 통해 지분 38% 이상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상반기(1~6월) 중 넥슨은 최대 1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AGBO의 이사회에는 넥슨 측 경영진 2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넥슨 안팎에선 이번 성과가 김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글로벌 인재 영입 노력의 결실로 보고 있다. 실제 AGBO 투자는 지난해 7월 넥슨에 들어온 닉 반 다이크 ‘넥슨 필름&텔레비전’ 수석부사장이 주도했다. 디즈니, 액티비전 블리자드 스튜디오 출신의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은 넥슨 합류 직후부터 AGBO와 접촉해 투자 규모와 협업 방안 등을 논의하며 속도를 냈다.
2020년 11월에는 케빈 메이어 전 디즈니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메이어 사외이사는 디즈니에서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등의 굵직한 인수를 주도한 경험이 있다. AGBO 투자 과정에서도 메이어 사외이사가 상당한 조언을 했다고 한다.
넥슨 관계자는 “AGBO 투자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더 많은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과 AGBO는 단순 영상물에서 나아가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를 포함한 ‘몰입형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협업할 예정이다. AGBO가 넥슨의 게임 IP인 ‘메이플스토리’나 ‘던전앤파이터’를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는 수준의 협업에서 그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AGBO의 공동 창업자인 조 루소 감독은 10, 20대인 자녀 4명이 비디오 게임 등에 몰입하는 것을 보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조 루소 감독은 “영화관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즐길 거리가 아니었다”라며 “앞으로는 게임사와 협업하는 방안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은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글로벌 투자를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미국 완구 회사,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에 투자를 진행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분야 상장사에 15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는 계획도 공개한 상태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