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문화부 차장
지난달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 첫 화를 보다 흠칫 놀랐다. 극 중반 주인공 에밀리의 친구이자 가수의 꿈을 키우는 민디가 프랑스 클럽 무대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를 열창하는 장면이 2분여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에밀리…’는 ‘섹스 앤드 더 시티’ 제작진이 참여해 전 세계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2위 성적을 거둔 작품이다.
‘오징어게임’의 흥행,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등 작년 한 해 ‘K컬처’가 세계를 상대로 거둔 성과는 이제 구문으로 느껴질 정도다. 한류의 한계로 지적됐던 ‘세계 유통’의 벽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무너졌다. ‘K컬처’ 활약과 맞물려 6년 전 사드 배치에 항의해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빗장을 내건 중국도 최근 배우 이영애 주연의 한국 드라마 방영을 허가했다. 지난달에는 한국 영화 ‘오! 문희’가 중국 극장가에 내걸렸다.
문화예술인들이 끌어올린 문화 강국의 위상과 달리 국내 문화 재정의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올해 정부 예산 604조 원 중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은 고작 1.2%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체육, 관광 분야와 몫을 나눠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현장에서 만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문화계를 향한 최고의 지원은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이란 자조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여야 대선 후보 모두에게서 ‘문화’에 대한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련 공약이나 정책 제시도 없다. 여당 대선 후보가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BTS ‘다이너마이트’ 춤을 추거나 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BTS 유럽 공연 영상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정작 ‘제2의 BTS’가 나올 만한 문화적 토양을 만드는 구상은 양쪽 모두 없어 보인다. 이러니 문화계에서 “무관심이 최고의 지원”이란 조롱이 나오는 게다.
차기 정권은 차치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적폐청산’을 문화공약 1호로 내세웠던 현 정부의 문화 정책도 딱히 뭐라 꼬집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과거에만 집착한 모양새다. 문화 강국이란 수식어가 무색하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