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마른하늘의 벼락처럼 뚝 떨어지는 걸까요? |평생 기본에 충실한 그림을 밀고나가 인상파의 문을 연 작가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창의성’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저는 마르셀 뒤샹의 변기로 만든 작품 ‘샘’이 먼저 생각이 나는데요. 아무도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을 태연하게 내놓고 이것도 작품이라고 말한 그 도발적인 모습이 현대인이 기대하는 창의성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창의성은 꼭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남들을 놀래켜야만 입증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요.”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을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약 한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전시,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데요. 오늘 그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 미리 보기: 지독하게 기본에 충실해 거장의 경지에 오른 터너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1. 19세기 영국 작가 윌리엄 터너는 ‘새로움’과는 거리가 먼 아카데미식 역사화로 처음에는 인정을 받았다.
2. 그러나 빛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등 기본에 지독하게 충실해 말년에는 추상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고 이것이 인상파의 포문을 열어 주었다.
3. 놀랍게도 영국은 이러한 터너의 진가를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영국의 공립 미술관인 테이트는 뒤늦게 터너와 인상파를 연결시키는 기획 전시를 최근 10년 간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 모네의 해돋이보다 30년 앞선 그림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호수에 지는 석양, 1840년 경. 사진출처: 테이트 미술관(CC-BY-NC-ND)
여러분, 북서울미술관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을 관람하신다면, 2전시실에서 이 작품을 눈 여겨 보시길 권합니다. 우선 그림부터 살펴볼까요. 안개가 자욱하게 진 풍경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첫 눈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차분히 감상하면 호수의 물결이 보이고, 그 아래로 지는 태양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지요. 습기가 가득한 영국 날씨의 감각도 피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 그림은 영국 작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말년 작품입니다. 이 그림이 놀라운 이유는 첫 번째, 프랑스가 아닌 영국이라는 것, 두 번째, 19세기 후반이 아닌 1840년에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사조일 ‘인상파’ 작품이 아닌 점이 독특한 부분입니다.
비교를 위해 인상파의 시작을 알린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다시 한 번 볼까요.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년. 사진출처: Creative Commons
터너의 작품이 30년 앞섰는데도 불구하고 모네보다 훨씬 넓은 시야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터너는 단순히 좋은 작품을 남긴 것만이 아니라, 파리의 인상파가 탄생하도록 영향을 준 작가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터너는 어떻게 미술사의 한 시대를 연 거장이 될 수 있었을까요?
○ 기본이 오랜 시간 쌓이자 추상이 흘러 나왔다
터너는 14살에 로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1년 뒤 아카데미 여름 전시에 첫 작품을 선보였으며 27살에 아카데미 회원이 된 ‘예술 영재’였습니다.
J.M.W. 터너 리치몬드 언덕과 다리가 있는 풍경, 1808년. 사진출처: 테이트
특히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건축 사무소에서 도안을 그리는 제도사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영국의 풍경을 짜임새 있게 담은 수채화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거리의 건물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표현한 풍경과 타고난 공간 감각이 그의 무기였습니다.
게다가 터너가 활동하던 시기는 ‘역사 풍경화’(historical landscape painting)가 가장 인정을 받았던 때입니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역사화가 가장 중요한 장르로, 풍경화는 가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역사 풍경화는 로마 고대 유적이나 신화 속 이야기를 풍경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자연 풍경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나 국가적인 차원을 더해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 역사 풍경화로 가장 유명했던 화가는 프랑스의 클로드 로랭입니다.
클로드 로렝, 해 지는 항구, 1639. 사진출처: Creative Commons
터너의 초기 그림도 이러한 유행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이러한 역사 풍경화를 수채화나 판화로 판매하면서 터너는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학비를 벌었습니다.
상인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터너는 평생 코크니 악센트(영국 런던의 노동계급이나 중하층 계급이 사용하는 발음)를 썼다고 하죠. 그러나 그림으로 성공하면서 나중에는 자택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할 조그만 갤러리까지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래된 전통에서 터너가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두 번째 전시실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자료들이 등장합니다.
다양한 구슬에 비친 빛의 효과를 담은 터너의 수채 그림. 로열아카데미 강의 자료로 사용됐다.
로열아카데미 강의를 위해 사물의 원근법과 빛의 효과를 연구한 터너의 자료. 서울시립미술관 사진 제공
이렇게 터너는 건축적인 기하학이나 원근법 연구에서 더 나아가 빛의 효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파고들며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가면 터너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요. 그곳에 가면 터너가 야외에서 그린 수많은 스케치와 연구 자료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서울 전시는 극소수의 자료만 전시되고 있지만, 터너에게 과학적 탐구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역사적 풍경화를 그리되 단순히 인기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기본을 지독하게 파고 든 것이지요. 그 결과물을 같은 전시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J.M.W.터너, 그림자와 어둠 - 대홍수의 저녁, 1843년. 사진출처: 테이트
위에서 보여드린 1808년 그림과 비교해보시면 놀라운 변화를 바로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성경 속 주제를 담은 이 그림은 휘몰아치는 폭풍우의 으스스한 기운을 바닷가의 습기를 통과한 빛들의 효과를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술의 역사에서 추상화가 첫 등장을 하는 것은 1900년대 초반인데요. 터너는 자신의 몸이 감지하는 풍경을 관습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를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말년에 추상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마치 장인이 평생 한 우물을 파다 거장의 경지에 이르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터너의 이런 그림이 제대로 된 평가를 그동안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 터너에 바치는 조금 늦은 찬사
26살에 터너가 그린 자화상. 사진출처: 테이트
‘대가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작가임에도 우리가 터너에 대해 알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도 미술사를 배울 때 터너를 ‘낭만주의 화가’ 중 한 명으로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전까지 터너의 말년 그림은 인상파 작가들이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잘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비평가들은 터너의 말년 그림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며 그림이 랍스터 샐러드 같다는 혹평도 했습니다. 아카데미 원장인 조슈아 레이놀즈 경은 터너를 지지해주었지만, 이는 인간적인 차원이지 그림을 이해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터너는 아버지와 함께 칩거하는 삶을 살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는 더욱 세상과 고립됩니다. 1841년에는 인구조사에 자신이 기록되는 것이 싫다며,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테임즈강에 배를 타고 나가 세상에 없는 사람인 척 했다고 하네요.
첫 전시실에서 유명 현대미술가 아니시 카푸어의 설치 작품을 마주보도록 전시된 터너의 그림들.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그래서 제게 이번 테이트미술관의 전시는 미처 알아보지 못한 거장 터너에게 바치는 조금은 늦은 찬사처럼 느껴졌습니다.
터너의 작품이 총 14점이 전시가 되고 있는데, 이는 총 작품(110점)의 10%가 넘는 정도입니다. 참여 작가 수가 43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비중이지요.
전시의 흐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전시실에서는 유명 현대미술가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이 터너의 대작을 마주보고 있고요, 2전시실은 터너의 작품와 연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다음엔 야요이 쿠사마의 설치 작품과 인상파 작품 여러 점을 마주하게 됩니다.
즉 이 전시는 아주 완곡한 방식으로 터너의 작품이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음을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국 작가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는, 공립 미술관의 당연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터너, 태양 속에 선 천사, 1846년. 사진출처: 테이트
미술사를 보면서 깨닫는 한 가지를 터너의 삶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느끼고 믿는 신념을 꾸준히 따라가 추상의 문을 연 용기. 그것은 결국 프랑스의 눈 밝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수백 년이 지나 자국의 미술 기관에게도 마침내 전달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반 고흐로 대표되는 ‘살아서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의 신화가 조금은 뻔하지만, 신념을 갖고 자신만의 창의적 세계를 열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전시장에서 터너의 지독한 성실함과 용기를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한 줄로 보는 전시
모네, 피사로, 칸딘스키, 아니시 카푸어, 브루스 나우만은 물론 국내에서 다시 보기 힘들 윌리엄 터너 작품을 맛볼 기회.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빠지는 힘은 아쉽.
추천지수(별 다섯 만점) ★★★★
전시 정보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2021. 12. 21 ~ 2022. 5. 8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서울 노원구 동일로 1238)
작품수 110 점
‘영감 한 스푼’ 연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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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