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관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가 70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투명한 인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일보 DB
외교부는 최근 안일환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표부 대사에 임명하는 등 해외 공관장 인사를 단행했다. 요소수 사태 당시 ‘건강상 이유’로 그만뒀다고 했던 안 전 수석은 두 달 만에 OECD 대사 자리를 꿰차게 됐다. 아그레망 일정까지 감안해 통상 3, 4월에 하던 춘계 공관장 인사를 앞당긴 것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사장 전진(승진) 인사를 예고했다. 대선이 임박한 시점의 검사장 승진 인사는 이례적이라 우호적인 검사 알박기 의도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공항공사 한국마사회 등 임기 3년의 공기업 기관장 인선도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영향으로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알빼기’가 어려울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하다. 대선에 임박해선 가급적 굵직한 인사를 하지 않고 차기 정부에 넘기는 관행은 무시되고 있다.
이 같은 임기 말 알박기 논란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 인사의 룰과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마다 ‘코드 인사’(노무현 정부) ‘고소영·강부자 인사’(이명박 정부) ‘수첩 인사’(박근혜 정부) ‘캠코더 인사’(문재인 정부) 등 인사 파행이 늘 불거졌다. 내 편, 내 사람을 심는 데 급급했다.
역대 정권 내내 이어져온 왜곡된 인사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한국판 플럼북(Plum Book)’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플럼북은 겉표지가 자두색이어서 붙은 이름으로 미국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 9000여 개의 리스트를 담은 인사 지침서다. 각종 직책의 임명 방식, 급여, 임기 등이 담겨 있다. 대선이 있는 12월 미국 상하원이 인사관리처의 지원을 받아 책자로 펴낸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가 7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공모 절차 등이 있지만 사실상 깜깜이다. 확실한 것은 청와대가 실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니 모두 청와대에 줄을 댄다. 이런 불투명하고 후진적인 인사 방식을 언제까지 그대로 놔둘 건가. 임명 주체, 방식, 자격요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청와대의 무분별한 인사 개입을 차단할 수 있어야 낙하산, 알박기 인사 논란도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