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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정]노사관계 현실 외면한 노동이사제 안 된다

입력 | 2022-01-10 03:00:00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치권은 선거의 계절을 맞아 노동계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전략적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동이사제란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재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도 응답이 없다. 모든 법안이 그러하듯 정치 논리에만 입각한 입법 추진은 위험하다. 기존 법질서와의 논리적 정합성과 기업 및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실익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노동이사제는 194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서독을 점령한 연합국이 전범기업 해체 및 군수산업에 대한 통제의 일환으로 도입한 게 노동이사제다. 자발적으로 도입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은 종주국인 독일 내에서도 노동이사제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도입 기업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기업 구조도 독일과 한국은 많이 다르다. 독일의 기업 형태는 유한회사가 9할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주식회사는 극소수다. 기업들은 주로 소수 투자자와 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기업이 활동하는 지역 주민들이 곧 투자자고, 자금을 대는 은행 예금주인 동시에 근로자인 경우도 많다. 따라서 기업 이익은 곧 은행이나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자연스럽게 근로자 대표도 회사 성장을 누구보다 바랄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기업 중 9할 이상이 주식회사 형태다. 회사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에 있고 회사 지배권 역시 주주에게 있다. 이러한 주주중심주의적 회사 지배구조 아래에서는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동이사의 목적과 주주 이익이 상충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이 이 제도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배경이다.

노동이사제는 또 유럽식 노사관계 풍토에 특화된 제도다. 독일 노동조합은 산업별로 조직돼 기업 밖에 존재한다. 개별 기업과 교섭이나 소통을 위한 채널은 없다. 이에 노동이사제는 공동결정제도의 일환으로 작동한다. 한국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기업별 조직 형태를 띠고 있다. 노동이사가 없는 지금도 기업 노조는 단체교섭과 노사협의회를 통해 일정 부분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한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가 역사적 배경과 법질서 및 노사관계가 상이한 다른 나라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확신은 위험하다. 설령 그 취지가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이해가 없으면 자칫 각각 올바른 행위가 전체적으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합성의 오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