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현 산업1부 기자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돈룩업’은 6개월 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상황을 가정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지구가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과 부딪힌다는 설정의 영화가 SF가 아닌 블랙코미디로 분류된 이유는 인류 종말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다루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순 없지만 영화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표 관리’가 더 중요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영화는 ‘혜성 충돌’이라는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지만 혜성 충돌 대신 어떠한 상황을 설정으로 삼더라도 감독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인류가 절멸하든 말든 편 가르기를 통한 지지층 결집이 유일무이한 목적이자 동력인 정치인들을 꼬집는 게 영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리적 배경은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닌 국가를 배경으로 놓는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60일도 채 남기지 않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영화 ‘돈룩업’에서 마주했던 장면들이 묘하게 겹친다.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등 수많은 경제 주체들의 아우성,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각종 규제 안에서 불안해하는 기업인들의 호소는 대선 정국에서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소매유통 경기가 지난 분기에 이어 기준치를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수출 기업의 약 86%는 올해 통상 환경이 지난해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경제 공약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려워한다. ‘코스피 5,000’ ‘집값 안정’ 등 달콤한 구호들은 난무하지만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키울지, 저평가된 자본시장은 어떻게 개선할지, 중장기적인 조세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9년이나 빨라진 인구 5000만 명 붕괴 시대는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청사진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 대선까진 시간이 남아 있다. 후보들의 토론도 이어질 것이다. 경제 주체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꾸준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제 이에 대한 답변을 대선 후보들이 건네줄 차례다. 그러곤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공약 이행 방안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정치인들이 정치에만 함몰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돈룩업’의 섬뜩한 결말로 잘 묘사돼 있다.
송충현 산업1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