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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튜브]소리에서 색을 본 랭보와 스크랴빈

입력 | 2022-01-1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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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스크랴빈(작은 사진)과 그가 창안한 ‘색의 오도권(circle of fifth)’. 특정 음으로부터 5도 간격에 있는 음이 가장 비슷한 색깔을 띤다는 느낌을 담았다. 동아일보DB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검은 A, 흰 E, 붉은 I, 초록 U, 파란 O: 모음들이여,/언젠가는 너희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의 시 ‘모음’ 이다. A는 검고 E는 하얗다니, 시인은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을까. 이 시는 문학에 ‘공감각(共感覺)’을 도입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공감각이란 시각과 청각, 후각과 시각 등 다른 감각이 서로 대응되는 것을 말한다. 김광균의 시 ‘외인촌’에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는 구절, 박남수 ‘아침 이미지’에 나오는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라는 구절 등도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을 표현한 사례다.

하지만 ‘U는 초록, O는 파랑’이라는 식의 공감각은 뜬금없이 여겨질 수도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문인들도 랭보의 이 구절에 대해서는 ‘공감’과 ‘비공감’이 팽팽하다. 프랑스어가 모어(母語)인 사람은 공감하는 비중이 높다고 한다. 언어에 따라 모음의 뉘앙스나 이미지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랭보와 같은 천재만 이런 식의 연관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기자에게 숫자 3은 노랑, 4는 밝은 빨강, 5는 파랑, 6은 진한 분홍, 7은 초록, 8은 남색, 9는 고동색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인들에게 얘기하면 ‘나도 숫자에서 색깔을 연상한다’며 일부는 공감하지만 일부는 다르게 느낀다는 식으로 저마다의 심상(心象)을 들려주곤 한다. 냄새에서 색깔을 연상하거나 소리에서 맛을 느낀다는 사람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음악사에서 공감각을 표현한 대표적 인물로는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이 꼽힌다. 후기낭만주의와 20세기 음악 사이에 속한 그의 작곡 양식은 ‘신비주의적’이라고 표현된다. 그는 당대에 유행했던 ‘신지학(神智學)’에 심취해 그 사상을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신지학이란 특정 종교를 초월해 개인의 직관으로 신을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 또는 그 세계관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스크랴빈은 기존 화음체계를 벗어난 이른바 ‘신비화음’을 작품에 도입했고, 작품 속의 ‘엑스터시’를 통해 신을 표현하거나 체험하기를 시도했다.

스크랴빈의 공감각적 시도는 특정 높이의 음이 특정 색깔과 대응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 C음(도)은 빨강, D(레)는 노랑, E(미)는 하늘색이었다. 피아노 건반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음보다 5도(네 음) 차이 나는 음이 더 가까운 색을 나타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상상한 음의 색깔은 화음이나 조성(調性)과도 연관됐다. C음이 빨강이니 C장조(C음을 ‘도’로 사용하는 장조)도 빨강, C화음(도미솔)도 빨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특정 음이나 조에서 색깔을 떠올렸던 그의 감각은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을까. 음악가들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회고록에서 스크랴빈의 색채론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썼다. 스크랴빈은 이에 대해 라흐마니노프가 오페라에서 금빛 보물 상자를 나타내는 장면을 D장조로 썼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크랴빈 자신이 ‘D음이나 D장조는 노랑’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당신은 부정하려 했지만, 당신의 직관이 무의식적으로 그 법칙을 따른 것입니다.” 아마도 라흐마니노프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크랴빈은 나아가 자신의 색 이론을 구현할 ‘악기’를 개발했다. 영어로 ‘instrument’이지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니 악기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clavier ‘a lumi’eres(빛의 피아노)’라고 이름 지은 이 기계는 건반을 누르는 데 따라 그 음에 해당(한다고 스크랴빈이 생각)하는 빛을 스크린에 투사했다. 스크랴빈은 관현악 작품인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 1915년 뉴욕 초연 때 이 기계를 선보였다.

스크랴빈의 ‘색채-소리’ 이론은 자기만의 엉뚱한 망상이나 집착이었을까, 아니면 대부분의 프로 음악가들조차 느끼지 못한 것을 자신만의 뛰어난 감각으로 포착한 것이었을까. 6일은 스크랴빈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 ‘기이한 천재’의 여러 면모를 재조명하는 일이 올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