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ES에 데뷔한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
빈패스트가 CES2022에 선보인 전기차들. 외관은 확인할 수 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차량 내부는 볼 수 없다.
5일(현지 시간)부터 7일까지 사흘 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가전·IT(정보통신) 전시회 CES 2022가 열렸는데요. CES의 주인공 중 하나는 모빌리티입니다. CES에서 모빌리티 비중이 높아진 건 이제 상식이죠.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는 중심이 되는 센트럴 홀(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이 위치)을 중심으로 위치에 따라 노스 홀, 사우스 홀(올해는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웨스토 홀로 구성됩니다. 이 중 웨스트홀이 모빌리티 제품이 주로 전시되는 곳이죠.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스텔란티스 등이 여기에 전시관을 꾸몄습니다. 이곳에 머무르다보면 여기가 가전·IT 전시회인지, 모터쇼인지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빈패스트가 CES2022에 선보인 전기차들. 외관은 확인할 수 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차량 내부는 볼 수 없다.
빈패스트(Vinfast)는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 그룹(Vingroup)’의 자동차 제조 자회사입니다. 베트남 최초의 완성차 업체이기도 하죠. 2017년 9월 설립됐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2019년 6월 첫 번째 양산차 ‘파딜’을 내놓았습니다. 신생 업체다보니 품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국 차량을 구매해야 한다는 애국심 마케팅을 타고 베트남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렸습니다. 그리고 첫 내연기관 양산차가 나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20년, 빈패스트는 전기차 생산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향해 거침없는 진격이 시작됩니다. 빈패스트는 앞서 지난해 11월 열린 로스엔젤레스(LA) 모터쇼를 통해 미국 시장에 VF e35, VF e36 등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2종을 선보인다고 발표했죠. 올해는 처음으로 CES에도 참여했습니다. 총 5종의 전기차를 들고서요.
CES2022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웨스트 홀에 설치된 베트남 자동차회사 빈패스트의 전시관 전경.
베트남 전기차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열광적인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LA 모터쇼에서 차량들이 선공개된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요.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배터리 충전시간, 공개되지 않은 내부 등 구체적 정보가 부족하다는 전제를 달며 평가를 유보했습니다. 아무래도 신생 브랜드의 전기차인 만큼 직접 운전해보기 전까지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겁니다.
터키의 신생 전기차 브랜드 토그(Togg)의 콘셉트카. 토그는 터키 자동차 조인트 벤처 그룹의 터키어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이 회사는 스스로를 ‘기술 기반 회사’로 정의하며 CES에 처음으로 참가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 회사 ‘피닌파리나(Pininfarina)’가 디자인한 콘셉트카는 꽤 인상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전시관에서는 터키를 포함한 중동 국가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이 차량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적잖은 관심을 표시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실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등에서 발견된 토그 관련 게시물은 당연하겠지만 영어보다는 아랍어, 터키어 이용자들 사이에서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빈패스트와 토그 전기차의 CES 등장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두 회사 모두 공통적으로 각 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국가에서는 으레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소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먼저 토그. 터키자동차생산협회에 따르면 터키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2017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르노, 닛산, 현대차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생산공장이 있는데 이들이 터키 공장 가동률을 줄이면서 발생한 일이죠. 자동차 생산기지지만 자국 브랜드가 없다는 약점을 메우기 위해 토그를 설립했고, 때마침 전기차 시대가 열렸으니 전기차를 통해 시장을 확보하고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흔히 개발도상국이라고 불리는 이들 국가들이 전기차 시장 진입을 위한 야망을 불태우는 건 내연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부품 수는 내연기관의 30% 수준에 불과하고 구조도 상대적으로 단순합니다. 부족한 충전 인프라는 깔면 됩니다. 차량용 휘발유를 생산하는 설비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점은 덤이고, 개도국을 괴롭히는 환경오염 이슈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일자리도 대규모로 창출할 수 있겠네요.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중국이죠. 테슬라를 제외하면 비야디(BYD), 니오, 샤오펑 등 전부 중국 토종 전기차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상징하는 자동차 포니의 1976년 당시 신문 광고. 베트남, 터키 등 신흥국은 한국의 현대차처럼 자국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하길 원하고 있다.
물론 이런 신생 브랜드들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전부 성공한다는 건 아닐 겁니다. 생산 라인을 빠르게 확보해야 하는 문제, 안전성과 성능을 검증받아야 하는 과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겪었던 차량용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확보. 거기에 아무리 잘 만든 차라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점 등등….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가 연이어 등장할수록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차와 기아의 고민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끼리 경쟁하는 것과, 토종 브랜드를 상대하는 건 차원이 다른 싸움이기 때문이죠.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 시장은 그나마 사정이 낫겠지만, 베트남이나 터키 같은 신흥국에서의 경쟁은 더욱 험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기차 시대의 승자는 누가 될지, 어떤 전략과 차종으로 승부가 펼쳐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입니다.
라스베이거스=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