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전 세계 대부분의 비참함의 근원이다. 거의 모든 악이 일에서 나온다.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에서 1985년 출판된 ‘일의 폐기’는 서문에서부터 과격한 주장들을 쏟아낸다.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했던 저자 로버트 블랙은 자본주의의 근로 시스템을 비판하며 현대인을 종속시키는 노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최근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는 미국의 ‘반(反)노동’ 온라인 카페도 이 책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개설된 ‘반노동(Antiwork)’ 온라인 카페의 회원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18년 12월까지만 해도 1만 명 미만이었던 회원 수는 불과 3년여 만인 이달 160만 명으로 불어났다. ‘부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무직(無職)!’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디지털 공간에서 회원들은 불합리한 처우와 근무 환경을 고발하고 퇴사 관련 정보들을 공유한다.
▷반노동이라는 단어는 국내에서 노동계를 탄압하고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돼 왔다. 반면 미국에서의 ‘반노동’은 임금근로자로 조직이나 상사에 매여 일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강해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근무 방식, 환경의 변화와 함께 일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미국의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코로나19 지원금과 실업급여로 여유가 생긴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일의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무의미한 야근이나 서류 업무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저녁이 있는 삶’도 중요하다. 인재 확보를 고민하는 기업들로서는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노동의 의미 자체를 퇴색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일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그 안에서 보람과 가치를 찾아가는 게 목적이기도 하다. 또한 작용에는 항상 단기적인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 시대가 끝난 뒤 노동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하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