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군대가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상징인 파란 철모, 일명 ‘블루 헬멧’(Blue Helmets)을 착용한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개별 국가들은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이라는 맥락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만 유엔 휘장을 사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문제를 제기하자, 카자흐스탄 당국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답변했다”고 했다.
유엔 주재 카자흐스탄 대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진 속 병력은 국방부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사회 기반 시설 보호를 위해 배치됐다”며 “철모 외에 다른 유엔 장비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유엔과 관련된 장비가 대테러 작전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를 ‘국제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고 보안군에 예고 없이 조준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호주 로열멜버른공과대학교(RMIT)의 국제 안보 전문가 찰스 헌트는 카자흐스탄 당국이 유엔 평화유지군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합법성을 끌어내기 위해 시도”했고, 카자흐스탄 보안군을 “더 국제적인 행동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카자흐스탄의 의도가 무엇이든 유엔 철모를 착용한 카자흐스탄 군대가 인권 침해 사실이 있을 경우 유엔 평화유지군의 명성과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평화활동국과 카자흐스탄 국방부는 논평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이번 시위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에 반대하는 의미로 2일 시작돼 반정부 항의 시위로 확대됐다.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시위 초기 유화적 태도로 나와 총리 등 내각을 해산했다. 그는 격렬한 시위로 시위대 수십 명과 경찰 10명 이상이 숨지는 불안이 지속되자, 시위 원인인 LPG 가격 상한선 폐지를 6개월간 유예하기로 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CSTO에 평화유지군을 요청했고, 2500명의 평화유지군이 6일 투입됐다. CSTO는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타지키스탄 등 옛 소련권 7개국으로 구성된 러시아 주도의 안보 체계다.
평화유지군 및 카자흐스탄 보안군과 경찰이 무장한 채 도심 일대에 배치됨에 따라 반정부 시위는 진정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1일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자 중 99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망자는 164명, 부상자는 8000명 이상이라고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전했다.
카자흐스탄 인권단체는 사망자에 4세 여아 등 최소 3명의 미성년자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이번 반정부 시위로 1억7500만 유로(약 248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100개 이상의 은행 및 기업, 차량 400대 이상이 파손됐다고 발표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10일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태를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며, 경제적 손실은 20억 달러(약 2조3934억원)에서 최대 30억 달러(약 3조5901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직에서 해임하고, 전 대통령의 측근인 카림 막시모프 국가보안위원회(KNB) 위원장도 국가반역 혐의로 체포했다. 나자르바예프의 조카인 KNB 제1부위원장 사마트 아비쉬도 7일 알마티에서 체포됐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전 대통령의 국가 전복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지만, 토카예프의 전 정부 세력 축출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시위 진압과 막시모프 위원장 체포를 통해 토카예프 대통령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잔존 영향력을 제거하고 실권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11일 러시아 타스 통신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24시간 넘게 총격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거리에서 많은 차와 자동차를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도시의 특정 지역에는 순찰대의 감시가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