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박물관 전시실이나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그물추를 볼 때마다 고대인들은 그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한반도에서 그물은 신석기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8년 강원 정선군 매둔동굴 퇴적층에서 2만9000년 전 무렵 후기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물추가 출토되면서 시기가 앞당겨졌다. 구석기부터 줄곧 사용된 그물추는 돌을 갈거나 흙을 빚어 만들었기에 숱하게 남아있지만, 그물망은 나무껍질 등 유기물로 만들었으므로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칡넝쿨 등을 쪼개 만든 그물을 사용했다. 엉성한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다가 놓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본 정약용은 어부들에게 무명이나 명주실로 그물을 만들고, 소나무 끓인 물에 담갔다가 사용해 부식을 방지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1801년 강진으로 유배되기 전 경상도 장기현(포항시 장기면)에 머물 때 일화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 바다에 서식하는 해산물을 관찰해 자산어보(1814년)를 저술했다. 유배지에서 동생은 그물 만드는 방법을 전했고, 형은 어류 박물지를 남겼다. 신유박해 때 정약전과 정약용은 나주 밤남정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각자 유배지인 흑산도와 강진으로 떠났고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런 내력 때문인지 영화 ‘자산어보’를 관람할 때 그물 재현 방식이 궁금해 유심히 화면을 본 기억이 있다.
인류의 그물 이용 역사는 유구하다. 수만 년을 천연소재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1950년대까지 칡넝쿨을 이용한 갈망(葛網), 대마 껍질로 만든 마망(麻網), 면사 그물망 등을 사용했다. 가죽나무 껍질, 삼, 새끼줄, 칡 줄기 등을 이용해 그물 몸줄과 뜸줄, 발줄, 닻줄 등을 만들었다. 그물 제작은 전적으로 어부들 노동력에 의존했으므로 예삿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조업할 때 쉽게 훼손됐으며 여름철 우기에는 부식되기 일쑤였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갈물을 입혔다. 큰 가마솥에 물을 붓고, 참나무 껍질이나 해당화 뿌리 등을 넣어 끓이면 갈색의 진액이 나온다. 이 액체에 그물을 넣고 다시 끓여서 염색했다. 조기잡이 섬으로 유명했던 연평도 노인들은 1950년대까지 갈물을 우려내던 갈가마가 해변에 즐비했음을 증언했다. 지금은 갈가마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음식점만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수만 년을 사용하던 천연소재 그물은 부식돼 전해지지 않는다. 반면 합성섬유 그물을 사용한 것은 불과 60여 년에 불과하지만 바닷속에 쌓여가고 있다. 해양오염은 말할 것도 없고, 유실된 그물에 물고기가 걸려 죽고, 그 사체를 먹으려 모여든 또 다른 물고기가 걸려 죽는 피해가 심각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연 소멸되는 생분해 그물이 차츰 보급되고 있다. 언젠가는 고성능 생분해 그물로 완전히 대체돼 우리 시대에 사용한 그물을 후손들이 볼 수 없기를. 식물재료로 만든 그물을 수만 년 사용했으나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처럼.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