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물가 19년만에 최대 상승률… 당국 발표에도 “더 올랐을 것” 불신 “올 물가상승률 40% 넘을 것” 전망… 에르도안은 “부당한 숫자” 궤변 금리 대폭 인하… 리라화 폭락 혼란 “장기집권 예스맨에 둘러싸여” 지적
“우리에겐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의 한 식료품점 주인 셀라메트 씨는 “물가가 너무 올랐다. 감자 양파 같은 품목은 50% 이상 올랐다”며 7일 알자지라 등 외신에 불만을 쏟아냈다. 터키의 공식 통계기관인 터크스탯은 지난해 12월 터키의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36.08%에 달해 19년 만에 최대치라고 발표했지만 이마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
○ 36% 물가 폭등 발표에 “더 높을 것”
터키인들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물건 가격의 변화를 사진으로 찍어 ‘인증샷’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거벗은 채 “인플레이션”이라고 외치는 남성을 촬영한 영상이 지난해 12월 급속도로 퍼지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포퓰리스트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온갖 악의 부모이며,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논리로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포퓰리즘적 인식이 터키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에르도안의 변칙적(unorthodox) 경제 정책이 극도의 통화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 포퓰리즘에 흔들리는 터키 경제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 인하 요구에 따르지 않는 중앙은행 총재를 여러 차례 경질하는 등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19%이던 기준금리는 넉 달 만인 올해 1월 14%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리라화가 급격히 하락하자 터키인들이 가상화폐를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바이낸스 등 가상화폐 거래소 3곳을 기준으로 리라화를 사용한 가상화폐 거래액이 최근 일평균 18억 달러(약 2조1465억 원)로 증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측근들이 ‘예스맨’들로만 채워져 이런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WP는 “전문가들은 술탄(이슬람 국가에서 군주를 가리키는 용어)에게 (입을) 옷이 없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