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역사를 다룬 만화책 ‘페인트 잇 록’의 일부분. 후기의 팝 성향과 달리 블루스 록을 구사한 초기의 미국 밴드 플리트우드 맥 이야기(왼쪽)와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의 탄생기를 다룬 장면들. 남무성 작가 제공
임희윤 기자
“알고리즘은 반드시 추억 속 가수에게 현재를 선사할 것이다.”(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새해를 맞아 음악계 전문가들에게 올해의 노스트라다무스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이런저런 예언이 난무했는데 서두의 저 문장이 뇌리에 콕 박혔다.
근래 유튜브와 음원 플랫폼의 자동 추천 알고리즘은 지금껏 여러 번 시간을 거슬러 옛 노래를 소환해줬다. 가까이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부터 멀리는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1977년), 브렌더 리의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1958년)까지….
#1. ‘페인트 잇 록’
책 제목을 보자마자 ‘어이쿠!’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아재, 아지매들은 고령으로 안 좋은 무릎을 탁 쳤으리라. ‘올 것이 왔구나!’
Z세대에게는 암호와도 같을 저 세 어절의 타이틀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자신에 또 한 번 놀라면서 ‘본(本)아재’(나)의 혀끝에서도 ‘입틀막(입을 틀어막다)!’이나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 같은 Z세대 줄임말 버전의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저것은 다름 아닌 영국 밴드 롤링스톤스의 록 명곡 ‘Paint It Black’(1966년)을 뒤튼 것이 아닌가. 마지막 단어를 ‘블랙’이 아닌 ‘록’으로 바꾼 것은 신의 한 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를 단 한 음절로 요약한…!
예스러운 표현으로, 각설하고….(말줄임표도 너무 자주 쓰면 예스러운데….)
몇 년 전 나왔던 저 책이 심지어 개정증보판으로 최근 다시 나왔다. 록 팬으로서 아직 이 땅에 희망이 살아있음을, ‘Rock will never die(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오랜 격언이 무덤을 뚫고 손짓함을 느낀다.
#3. 2022년에 나타날 트렌드에 대해 뜻밖에도 전문가 여럿이 록의 귀환을 꼽았다.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랩계의 커트 코베인(밴드 ‘너바나’ 리더)을 자처한 릴 핍(1996∼2017)을 위시한 미국 이모 랩 장르의 출현도 그중 하나다. 래퍼 포스트 멀론과 다베이비는 각각 ‘rockstar’(2018년)와 ‘ROCKSTAR’(2020년)라는 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국내 래퍼 창모는 지난해 11월 ‘UNDERGROUND ROCKSTAR’라는 앨범을 냈다.
록 스타란 화려한 삶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록적 요소가 요즘 랩에 꽤나 자주 사용된다.
Z세대 음악 팬들 사이에는 특히 영국 밴드 오아시스를 위시한 1990년대 록에 대한 동경도 크다. 오아시스의 옛 앨범들이 4만∼5만 원짜리 LP로 재발매될 때마다 젊은이들이 레코드점 앞에 줄을 서는 풍경은 놀랍게도 2020년대의 이야기다. R&B·솔에 기반한 팝을 구사하던 백예린이 지난해 록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보컬로 변신해 강렬한 앨범을 낸 배경에는 오아시스의 로큰롤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을 본 경험이 있다.
#5. 짜릿한 만화책 ‘페인트 잇 록’을 보며 시계태엽을 조금 더 앞으로 감아 봤다. 1980년대 말이다. 치렁치렁 긴 머리에 화장을 하고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글램 메탈 밴드들에 관한 챕터. 밴 헤일런, 머틀리 크루, 본 조비가 백가쟁명하며 무한경쟁과 디스전을 벌이는 모양새는 머리만 길었지 래퍼들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록이 오죽 뜨거웠으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도 에디 밴 헤일런을 기용해 ‘Beat It’에 속주 기타 솔로를 넣었을까.
#6. 미국 로커 로니 제임스 디오(1942∼2010)는 록의 상징인 ‘메탈 혼(metal horns)’ 제스처를 대중화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주먹을 쥐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린 유명한 동작 말이다. 땅속에 반쯤 파묻힌 저 메탈 혼은 과연 다시 땅 위로 치솟을 것인가. 2022년이 기대되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