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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무덤을 흔드는 손, 록은 부활하나

입력 | 2022-01-14 03:00:00

록의 역사를 다룬 만화책 ‘페인트 잇 록’의 일부분. 후기의 팝 성향과 달리 블루스 록을 구사한 초기의 미국 밴드 플리트우드 맥 이야기(왼쪽)와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의 탄생기를 다룬 장면들. 남무성 작가 제공

임희윤 기자


“알고리즘은 반드시 추억 속 가수에게 현재를 선사할 것이다.”(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새해를 맞아 음악계 전문가들에게 올해의 노스트라다무스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이런저런 예언이 난무했는데 서두의 저 문장이 뇌리에 콕 박혔다.

근래 유튜브와 음원 플랫폼의 자동 추천 알고리즘은 지금껏 여러 번 시간을 거슬러 옛 노래를 소환해줬다. 가까이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부터 멀리는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1977년), 브렌더 리의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1958년)까지….

이 최첨단 타임머신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올해 우리를 또 어떤 곳으로 여행하게 해줄 것인가.

#1. ‘페인트 잇 록’

책 제목을 보자마자 ‘어이쿠!’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아재, 아지매들은 고령으로 안 좋은 무릎을 탁 쳤으리라. ‘올 것이 왔구나!’

Z세대에게는 암호와도 같을 저 세 어절의 타이틀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자신에 또 한 번 놀라면서 ‘본(本)아재’(나)의 혀끝에서도 ‘입틀막(입을 틀어막다)!’이나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 같은 Z세대 줄임말 버전의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저것은 다름 아닌 영국 밴드 롤링스톤스의 록 명곡 ‘Paint It Black’(1966년)을 뒤튼 것이 아닌가. 마지막 단어를 ‘블랙’이 아닌 ‘록’으로 바꾼 것은 신의 한 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를 단 한 음절로 요약한…!

#2. ‘Paint It Black’이 주제곡으로 쓰인 미국 전쟁 영화 시리즈 ‘머나먼 정글’(1987∼1990년) 이야기까지 풀고 싶은데 참는 것은, 그러는 순간 이 글이 너무 머나먼 여정이 될 것이며 신세대에겐 TMI(투 머치 인포메이션)일 것이리라는 나의 기우 때문이겠지….

예스러운 표현으로, 각설하고….(말줄임표도 너무 자주 쓰면 예스러운데….)

몇 년 전 나왔던 저 책이 심지어 개정증보판으로 최근 다시 나왔다. 록 팬으로서 아직 이 땅에 희망이 살아있음을, ‘Rock will never die(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오랜 격언이 무덤을 뚫고 손짓함을 느낀다.

#3. 2022년에 나타날 트렌드에 대해 뜻밖에도 전문가 여럿이 록의 귀환을 꼽았다.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랩계의 커트 코베인(밴드 ‘너바나’ 리더)을 자처한 릴 핍(1996∼2017)을 위시한 미국 이모 랩 장르의 출현도 그중 하나다. 래퍼 포스트 멀론과 다베이비는 각각 ‘rockstar’(2018년)와 ‘ROCKSTAR’(2020년)라는 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국내 래퍼 창모는 지난해 11월 ‘UNDERGROUND ROCKSTAR’라는 앨범을 냈다.

록 스타란 화려한 삶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록적 요소가 요즘 랩에 꽤나 자주 사용된다.

#4. 언젠가부터 여러 아이돌그룹의 공식 프로필 사진 배경에는 은근슬쩍 전기기타나 LP레코드가 놓여 있다. 록은 돌아온 쿨한 패션도 된다.

Z세대 음악 팬들 사이에는 특히 영국 밴드 오아시스를 위시한 1990년대 록에 대한 동경도 크다. 오아시스의 옛 앨범들이 4만∼5만 원짜리 LP로 재발매될 때마다 젊은이들이 레코드점 앞에 줄을 서는 풍경은 놀랍게도 2020년대의 이야기다. R&B·솔에 기반한 팝을 구사하던 백예린이 지난해 록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보컬로 변신해 강렬한 앨범을 낸 배경에는 오아시스의 로큰롤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을 본 경험이 있다.

#5. 짜릿한 만화책 ‘페인트 잇 록’을 보며 시계태엽을 조금 더 앞으로 감아 봤다. 1980년대 말이다. 치렁치렁 긴 머리에 화장을 하고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글램 메탈 밴드들에 관한 챕터. 밴 헤일런, 머틀리 크루, 본 조비가 백가쟁명하며 무한경쟁과 디스전을 벌이는 모양새는 머리만 길었지 래퍼들의 세계관을 방불케 한다. 록이 오죽 뜨거웠으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도 에디 밴 헤일런을 기용해 ‘Beat It’에 속주 기타 솔로를 넣었을까.

#6. 미국 로커 로니 제임스 디오(1942∼2010)는 록의 상징인 ‘메탈 혼(metal horns)’ 제스처를 대중화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주먹을 쥐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린 유명한 동작 말이다. 땅속에 반쯤 파묻힌 저 메탈 혼은 과연 다시 땅 위로 치솟을 것인가. 2022년이 기대되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