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로 언어능력 약해지지 않지만 다른 기능 감퇴하면서 어려움 느껴 독서 많이 하는 노인은 어휘력 높아 근육 키우듯 언어능력 갈고 닦아야 일기처럼 긴 글 꾸준히 쓰는 사람, 모든 치매 발생 위험 53% 낮아 한국은 나이들수록 독서량 줄어… 언어능력도 함께 감퇴하는 경향
대부분의 뇌 기능이 나이가 들면서 감퇴하는 것과 달리 어휘력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듯 언어능력을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 언어능력이 감퇴한 것을 느낀다. 하려던 말을 잊거나 사물과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주제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노화는 언어능력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뇌의 다른 기능이 약화돼 언어능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언어능력을 꾸준히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리 있는 말솜씨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노화를 늦추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로저 크루즈 미국 멤피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체인징 마인드’라는 책에서 언어와 노화의 상관관계를 전했다. 최근 최원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노화와 언어는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를 펴냈다.
○“노화가 언어능력에 미치는 직접 영향은 없어”
책의 요지는 “나이 들수록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언어능력 자체보다는 시청력, 정보처리, 작업 기억 등 뇌의 다른 기능이 감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언어능력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작업 기억과 집행통제능력“이라고 말했다. 집행통제능력은 하나의 과제를 끝낼 때까지의 집중력과 한 과제를 끝내고 다른 과제로 쉽게 전환하는 능력을 뜻한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보다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거나 한 번 뱉은 말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은 이 능력이 감퇴한 결과라는 것이다.
○신체 단련하듯 ‘글쓰기’로 언어능력 단련해야
하지만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2012년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나이가 들면서 인지능력이 급감하지만 어휘력과 언어능력은 약간 감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신조어나 유행어가 많이 생겨나고 언어문화가 급격하게 바뀌는 탓도 있지만 언어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서구 사회보다 부족한 것도 한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최 교수는 “한국인은 학교를 졸업한 뒤 독서량과 독서 시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에는 영상매체에 대한 의존성이 늘면서 더욱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독서뿐 아니라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거나 글을 쓰고, 대화를 하는 것도 언어능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크루즈 교수는 “체력단련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듯 지속적으로 말하고 듣고 읽고 쓰면서 언어능력을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글쓰기다. 그는 “메신저 대화처럼 아주 짧은 글이라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회고하면서 글을 쓰는 일은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미국 유타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평균 73.5세 성인 215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일기처럼 긴 글을 꾸준히 써온 사람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비롯한 모든 유형의 치매 발생 위험이 53% 낮았다. 특히 여섯 글자 이상의 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효과를 높였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10월 국제학술지 ‘노년학 저널’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