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의 스케치북/휴 루이스 존스 등 지음·최파일 옮김/320쪽·4만 원·미술문화
험준한 산맥 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설원. 등짐을 진 두 명의 티베트인이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새긴 채 종종걸음을 친다. 이들 옆으로 거센 바람에 날아가는 걸 막으려는 듯 돌들로 고정한 누런 천막이 서 있다. 그 안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명의 탐험가들. 이 광막한 자연 앞에 선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까.
이 책에 소개된 스웨덴 지리학자 스벤 헤딘(1865∼1952)의 1908년 현장 스케치다. 그 자체로 한 폭의 광활한 풍경화인 이 스케치는 아마추어 화가가 현장에서 슥슥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탐사로 유명한 헤딘은 로프노르 호수와 인더스강의 수원(水源)을 발견한 데 이어 신장지역에 잔존한 만리장성 유적을 찾아냈다. 그런 그가 그린 중앙아시아, 티베트의 자연과 유적 스케치에는 이곳에 목숨을 건 한 탐험가의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 아닌 종이와 펜이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영국 역사가와 출판인 부부가 공저한 이 책은 극지부터 열대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계 오지들을 찾아 헤맨 탐험가 75명의 스케치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탐험가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마치 스케치북처럼 일반책보다 긴 가로 크기(30cm)에 넉넉히 실린 그림들은 탐험가들의 실제 노트를 넘겨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