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 반복되는 논공행상 인사 불투명·불명확한 대통령 인사권이 문제 새 정부, 새 지침 만들어 관행 끊어야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인정받는 잭 웰치는 GE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비결로 인재 등용을 꼽았다. ‘전략보다 사람이 우선’ ‘인재 선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등 수많은 어록에서 보듯이 그는 누구보다도 인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의 인사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인사를 ‘고·소·영’ ‘성·시·경’ ‘캠·코·더’ 인사 등 대선 공신(功臣)에 대한 논공행상 인사라고 비판하며 이를 공직 경쟁력 하락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현실 정치에서 공신의 공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대통령 선거를 도왔던 사람 또는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을 주요 자리에 임용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이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어느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철학은 이해하지만 이를 실천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임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배경을 국민들이 잘 알 수 없어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플럼북은 미국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연방정부 9000여 개의 직책에 대해 재직자의 이름, 임명 방식, 급여, 임기 및 임기 만료 시점 등을 열거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의 12월에 발행되는 플럼북은 1952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처음 발행되었다. 22년 만에 민주당 정부에서 공화당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선출된 아이젠하워가 본인이 임명할 수 있는 직위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플럼북이 발행된 1960년 이후 미국 정부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매 4년마다 플럼북을 발행해 대통령 인사권 범위를 규정하고, 임용된 공직자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이런 플럼북에 착안하여 ‘한국판 플럼북’을 만들면 어떨까? 우선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에서부터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직위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관심을 갖고, 인사수석·민정수석 비서관이 영향을 끼치는 자리까지 고려하면 대통령의 인사권 영향력은 더욱 넓어진다. 이에 대해 플럼북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직을 명확히 설정함으로써 그 이외의 공직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 영향력 행사는 불법임을 명확히 해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대통령이 임명한 자리에 어떤 사람이 임명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임명되었는지, 연봉은 얼마이며 보장된 임기와 남은 임기는 얼마인지를 공개해 인사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판 플럼북’은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가령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의 학력, 자격, 경력 등을 공개하면 국민들은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임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보은인사를 하더라도 ‘무자격자’를 함부로 임명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대통령 선거 주기마다 발행해 자료의 적시성이 떨어진다는 미국 플럼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판 플럼북’은 디지털 형식으로 만들어 웹이나 앱을 통해 자주 업데이트해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신 인사 자료를 원하는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말이다.
영국 투명성기구의 피터 밴 빈 기업이슈총괄 책임자는 반부패의 핵심은 ‘투명한 정보 공개’라고 역설한다. 장차관 및 고위공직자부터 공기업 및 공공기관 임원 인사에 이르기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통령의 불합리한 정치적 인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부의 인사혁신은 대통령 인사권 범위를 명확히 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의 면면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국판 플럼북’에서 시작될 수 있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