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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전서 쏟아진 ‘믿을맨’…벤투호 ‘플랜 B’ 찾았다

입력 | 2022-01-16 14:49:00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플랜 A’의 가동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플랜 B’를 찾았다.



터키 안탈리아에서 전지훈련 중인 대표팀은 15일 마르단 스타티움에서 열린 새해 첫 A매치 평가전에서 유럽의 ‘복병’ 아이슬란드에 5-1로 대승을 거뒀다. 해외파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 K리거들이 유럽 선수들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펼쳤다.

아이슬란드는 비록 2000년대에 태어난 선수들로 세대 교체 중이라 전력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유로 2016 8강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진출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2위의 만만치 않은 팀이다. 이 팀을 상대로 벤투 감독이 원하는 점유율 축구로 경기를 지배했다. 5골 모두 유기적인 패스로 상대 수비를 뚫어내면서 만들어졌다. 아이슬란드 전은 한국의 유럽 국가 상대 역대 A매치 최다 점수 차 승리다. 2002년 5월 16일 한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안정환의 2골 등으로 승리(4-1)한 이후 20년 만에 기록을 깼다.


공격 삼각 편대인 손흥민(토트넘)과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울버햄프턴)을 비롯해 중앙 허리 ‘더블 볼란치’ 황인범(루빈 카잔), 정우영(알 사드)을 대신해 기용된 선수들이 간결한 콘트롤과 적극적인 공간 움직임으로 공격을 이끌면서 골맛을 봤다. 조규성(김천)을 시작으로 권창훈(김천), 백승호(전북), 김진규(부산), 엄지성(광주)이 릴레이 골 행진을 벌였다. 조규성, 백승호, 김진규, 엄지성은 인생에 남을 A매치 데뷔 첫 골을 기록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한 경기에서 4명이 A매치 데뷔 골을 터트린 건 역대 두 번째다. 2000년 4월 5일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 전에서 설기현, 이천수, 심재원, 안효연이 A매치 데뷔 골을 넣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올림픽 대표팀이 아시안컵 예선에 출전한 것이라 실질적으로 아이슬란드 전이 최초 기록인 셈이다. 전반 권창훈의 페널티킥 실축과 후반 골포스트를 맞고 나온 이영재의 슛, 골문 구석을 갈랐으나 오프사이드로 처리된 김건희의 슛이 골로 연결됐더라면 대기록도 가능했다.

지난해 11월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라크 전에 나섰던 조규성은 아이슬란드 전을 통해 황의조의 백업 스트라이커로 벤투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받았다. 미드필더들이 공을 돌리며 전방 패스 투입 공간을 찾는 상황에서 빠르게 상대 문전 중앙에서 측면과 수비 뒷 공간으로 움직이며 수비를 흔들었다. 전반 15분 첫 골 상황도 김진규의 패스 타이밍에 맞춰 절묘하게 수비 배후를 빠져 들어가 슈팅 기회를 잡았다. 조규성의 움직임으로 좌우의 송민규와 이동경도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다양하게 공격 옵션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조규성이 수비를 등지고 정확한 키핑으로 공을 받아주면서 최종 수비에서 바로 전방으로 때려놓는 롱패스도 살아났다.


정우영-황인범을 대신한 백승호와 김진규도 벤투 감독이 바라던 공수의 ‘콘트롤러’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했다. 백승호는 공을 갖고 있는 포백 수비들에게 부지런히 접근해 패스를 받고 상대의 1차 압박을 벗겨냈다. 장신에 힘이 좋은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몸을 부딪히며 압박을 가했지만 공을 뺏기지 않았다. 상대 역습도 미리 끊었다.

김진규는 백승호의 바로 앞 자리에서 전방 공격수들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고 짧은 원투터치 2대 1 패스를 주고 받으며 직접 득점도 노렸다. 백승호-김진규 조합의 기민한 움직임에 아이슬란드의 압박 대형은 일찌감치 무너졌다. 백승호는 전반 29분 수비가 뒤로 물러서자 통쾌한 중거리포를 터트렸고, 조규성을 선제골을 도운 김진규도 후반 28분 예리한 2대 1패스로 나온 기회에서 팀의 4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송민규와 교체 투입된 엄지성도 상대 수비가 중앙 스트라이커 움직임에 시선이 쏠릴 때 순간 뒷 공간을 공략해 골문을 열며 측면 공격수 경쟁 구도에 불을 붙였다.

벤투 감독은 “좋은 경기였다. 일주일 동안 훈련한 것에 잘 반응을 해줬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한국은 21일 몰도바와 두 번째 평가전을 갖는다. 자신이 짜놓은 판을 잘 읽고 임무 수행을 한 ‘믿을맨’들이 새해부터 여럿 나오면서 벤투 감독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