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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윤완준]‘트럼프’가 다시 오고 있다

입력 | 2022-01-17 03:00:00

“증오 부추기는 극단 정치” 한숨 미 MZ세대
정치 양극화·민주주의 위기 틈탄 포퓰리즘



윤완준 국제부장


“미국 정치인들은 분열을 부추기고 국민들이 서로 증오하게 만들고 있어요. 미국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정치인이에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검사키트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30대 미국인 제프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15일 기자에게 미 정치인들이 적대감을 조장하기 위해 “(국민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표현까지 썼다.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20대 미국인 해나도 이날 “미국 정치는 정말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 절충안이 없다(no middle ground)”고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이 어느 한쪽 입장에만 “올인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미국에서 우려가 높아지는 틈을 중국이 파고들고 있다. 중국 런민(人民)대 중미(中美)인문교류연구센터가 지난달 미국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밀레니얼 세대 등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갈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다.”

언어유희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민주주의의 ‘주인 주(主)’자를 이용해 미국을 공격했다. “미국은 돈이 주인인 주의(錢主·Money-cracy), 총이 주인인 주의(槍主·Gun-cracy), 백인이 주인인 주의(白主·White-cracy), 언론이 주인인 주의(媒主·Media-cracy), 군대가 주인인 주의(軍主·Milita-cracy), 마약이 주인인 주의(藥主·Drug-cracy)다. 국민은 주인이 아니다. 미국 정치에 초양극화(hyperpolarization)가 나타났다.”

전형적인 중국식 프로파간다(선전)다. 하지만 정치의 양극화로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만큼은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도 같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의 이달 5일 뉴욕타임스 기고다.

“지난해 1·6 의회 난입 사태 이전 미국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나던)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삿대질하며 규탄했다. 그런 일이 이제 미국에서 벌어졌다.”

후쿠야마는 “정치가 갈수록 더 양극화되고 있다. (어떤 결과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정체(gridlock)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난 포퓰리스트들의 운동을 부추기는 근시안 선동정치가(demagogue)의 출현을 목격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추긴 의회 난입 사태에서 소수의 미국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까지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더 힐’은 지난달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40%가 상대를 ‘완전한 악(downright evil)’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주의가 정치사회 분열을 해결하지 못할 때 포퓰리즘의 유령이 다시 배회한다. 팬데믹 시대에 표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돈을 뿌리고 현실성 없는 공약으로 유권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올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 상·하원 중간선거를 비롯해 14개국이 대선 등 큰 선거를 치른다. 일본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층을 상대로 돈을 푸는 포퓰리즘 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

후쿠야마는 “트럼프가 부활(restoration)을 노릴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피즘’으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위기를 틈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