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차장
“제2차 세계대전 때 게토지역 유대인들이 가슴에 단 노란 별이 떠오른다.”
최근 한 대형 커피전문점이 손님 중 미접종자의 컵에 노란색 스티커를 붙여 논란이 됐다.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은 미접종자에 대한 조치가 독일 나치의 인종차별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당 기업은 “방역패스를 제대로 확인하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출입구에서 QR코드를 스캔할 때마다 “접종 완료자입니다” 혹은 ‘딩동’ 소리(미접종자)가 울리는 것도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지적이 있다. 방역이라는 공공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기본권이 필요 이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14일 서울행정법원이 서울시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시킨 것도 이 같은 지적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결과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 팬데믹 같은 비상 상황에서 이른바 ‘비상대권(非常大權)’이 발동된 사례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대권이 정치권력에 악용되곤 했다. 예컨대 1793년 프랑스 혁명정부는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논객들을 무더기로 체포하는 등 프랑스혁명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모순을 저질렀다. 공화제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이들과 연계된 ‘반혁명분자’를 일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는 팬데믹 이전부터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탈냉전 이후 자유주의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미국과 갈등 중인 중국, 러시아에 이어 동유럽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불린 헝가리, 폴란드마저 권위주의 체제로 퇴행했다. 국내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자 세계신문협회는 “개정안이 그대로 처리되면 한국 정부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논의를 억제하는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상 상황이라도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는 게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다. 이 원칙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로버트 케이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밀림의 귀환’(김앤김북스)에서 정원을 끊임없이 가꾸듯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유에 대한 갈망 이상으로 통제와 질서에 복종하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민주정체는 언제든 권위주의 독재 체제로 회귀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헝가리, 폴란드 사례가 대표적이다. 팬데믹 장기화로 사회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