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대지의 시간’전 작품-동선 구분하는 가벽 없애고 재사용 에어볼 등 친환경 노력
이주리의 ‘모습 某濕 Wet Matter_005’ 앞에 놓인 에어볼. 관객의 동선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배출한다. 990∼1600m² 규모의 전시장에서 개최하는 중대형급 전시의 경우 평균 5∼7t의 폐기물이 나온다. 대개 가벽에 쓰는 석고보드, 합판, 철골이나 전시 설명란을 만들 때 쓰는 플라스틱 등이다. 최근 전시에서는 전시 폐기물에 대한 국내 미술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전시 폐기물을 늘어놓고 문제점을 고발하거나, 전시 공간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지의 시간’은 생태에 대한 메시지를 공간에 잘 담아낸 전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공이 바닥에 놓여 있다. ‘작품인가?’ 하고 들여다봐도 작품 설명란은 없다. 국내외 작가 16명의 사진, 조각, 설치 등 35점이 출품됐는데, 작품이나 동선을 구분하는 가벽이 없다. 미술관은 열린 공간에 작품들을 놓고 가벽 대신 구형의 반사체 11개를 놓았다.
이 구형의 반사체는 영구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게끔 개발된 에어볼이다. 전시물 사이에 놓여 관객의 동선을 구분해 준다. 또 생태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각각의 작품을 비추며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전시는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체의 관점을 생각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성찰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표면이 반사 재질로 만들어진 에어볼은 ‘공존’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전시장 초입에 옛 전시 진열장을 활용한 정소영의 ‘미드나잇 존’(2021년)과 자연사박물관의 박제 동물을 사진에 담은 히로시 스기모토의 ‘디오라마’ 시리즈(1980년), 압록강 하구의 흙으로 물기를 머금은 흙 표면을 재현한 이주리의 ‘모습 某濕 Wet Matter_005’(2021년)가 놓여 있다. 에어볼에 비친 작품 옆에 놓인 관객은 그 자신도 생태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음 달 27일까지. 2000원.
과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