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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그들이 공학도가 된 이유

입력 | 2022-01-19 11:02:00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서울대 공대생들이 모두 강조한 말이다. 책 ‘공대에 가고 싶어졌습니다’를 출간한 (왼쪽부터) 김도현 안건 정원석 씨는 “부모님들이 도와줄 건 ‘공부하라’는 말 보다 자녀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인류 발전의 중요한 순간마다 공학은 언제나 핵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대학입시는 다르다. 공대에도 수학과 과학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지만 언젠가부터 자연계열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의대를 진학 우선 순위로 권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공학에 뜻을 품은 학생들은 정작 진로에 도움이 될 정보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 단체 ‘공우’는 공학도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진로의 길잡이가 되어 주자는 취지로 최근 책 ‘공대에 가고 싶어졌습니다’(메가스터디북스)를 냈다. 서울대 공대생들이 공대에 특화된 청소년 진로 도서를 쓴 건 처음이다. 집필에 참여한 김도현 씨(24·컴퓨터공학부), 안건 씨(26·바이오엔지니어링 석사), 정원석 씨(25·기계공학부)를 만나 공대에 가기 전까지 어떻게 공부했고, 공대에서 어떤 공부와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
“공부한 걸 바로 활용하는 게 공대 매력”

세 학생 모두 공대에 진학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로 가치를 창출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공대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 중이다. 김 씨는 “한 학기를 공부하면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게 되는 등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배운 걸 바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씨는 “수많은 인간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찍어 인공지능(AI)을 접목하면 사람의 지능을 예측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도를 예측할 수도 있다”며 “공학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으면 내가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대 공부는 늘 도전이다. 긴 시간이 소요되는 실험은 공대생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안 씨는 “재료공학부는 특히 실험이 많아 3학점 과목이라도 주당 6시간이 소요된다”며 “밤 6~9시로 예정된 실험이 제때 끝나지 않으면 밤 11시까지도 길어지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하루치 수학 과제에 공책 한 권을 썼다’, ‘과제 때문에 밤새느라 캐리어에 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간다’는 공대 학생들도 많다. 김 씨는 “쏟아지는 지식의 양이 엄청나 한 학기 지나면 다 공부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세 학생 다 학과 공부 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정 씨는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 제작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는 “2020년 대회 출전 전 한여름에 매일 주행장에 나가 있느라 피부가 새까맣게 타버렸다”며 “내가 짠 코드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공학자인 게 자랑스럽고 평생 이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공우’ 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세 학생의 공통점이다. 정 씨는 “공우는 매년 이공계 진학을 꿈꾸는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비전 멘토링’을 한다. 공학이 무엇인지, 공부법은 어떤지, 공대 생활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을 소개하는데 최근 2년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비전 멘토링 일정은 공우 홈페이지(gongwoo.snu.ac.kr)에 공유한다. 공우는 이번에 출간한 책 인세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미래 공학도 청소년에게 쓸 계획이다.


부모가 도와줄 건 ‘책 읽는 모습’ 보여주기

세 학생처럼 공학도가 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이들은 이번 겨울 방학에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성취감’을 느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씨는 고등학교(일반고)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내신에만 대비해 소홀했던 영어가 가장 어려웠다. 그는 “공부 시간을 유일한 무기로 삼아 공부한 덕분에 여름방학쯤 영어 성적이 올랐다”며 “이 때 얻은 ‘공부를 하면 성적이 반드시 오른다’는 희열과 신념이 고등학교 시절을 지탱하는 힘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안 씨는 수학을 잘 하려면 답지를 안 보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0, 20분 고민하다 정답지를 보지 말고 며칠이고 고민해서 풀어볼 때의 짜릿한 경험을 해봐야 실력이 압도적으로 향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는 “공부 시간이 한정된 만큼 일정 시간동안 안 풀리면 답지를 봤다”며 “답지에 있는 여러 가지 풀이와 함께 내가 어떻게 풀려다가 틀렸는지를 꼭 줄글로 적어 기억했다”고 설명했다.

자기만의 공부 스트레스 해소법을 갖고 있는 건 매우 중요하다. 쉬는 시간 정 씨는 축구, 안 씨는 농구에 몰두했다. 김 씨에게는 ‘오늘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전에 30분 동안 드라마나 소설 봐야지’ 하는 생각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부모님의 ‘솔선수범’도 세 학생의 공통점이었다. 안 씨는 “중학교 때 아버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없애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공부는 학생이 혼자 하는 거라 뭔가 해주고 싶다면 같이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말 보다 필요한 책을 말씀드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며 “오히려 ‘내가 정신 안 차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