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원 짜리 햄버거부터 1만 6000원이 넘는 커피 칵테일에 이르기까지 해외 인기 외식업체들이 고급화를 앞세워 앞다퉈 한국에 상륙 중이다. 이들은 비쌀수록 잘 되는 국내 시장을 겨냥해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과 프리미엄화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난 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정식 오픈한 ‘고든 램지 버거’다. 영국 출신 유명 요리사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브랜드로 서울 매장은 아시아 최초이자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카고와 영국 런던에 이어 전 세계 4번째다.
고든 램지 버거는 기존 미국 매장이 캐주얼 식당인 것과 달리 국내는 ‘하이엔드 레스토랑’을 콘셉트로 잡았다. 가장 고가인 14만 원짜리 ‘1966버거’는 국내에만 단독 출시한 메뉴로 한우 2+등급 채끝살 패티와 트러플 페코리노 치즈, 12년산 발사믹 식초 등을 사용했다. 매장 내 테이블과 의자도 모두 수작업 제작했다. 의자의 경우 개당 90만 원에 이른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커피 시장에도 글로벌 커피 브랜드들이 고급화를 내세워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20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 커피 브랜드 플래시커피는 최근 가로수길에 한국 1호점을 냈다. 플래시커피는 국외에서와 달리 서울에는 ‘커피 바(Bar)’ 매장을 별도로 열어 전 세계 200여 개 매장들과 차별화했다. 번트커피버번 등 커피와 칵테일을 혼합한 다양한 주류를 1만3000원~1만 6000원의 고가에 판매한다.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인기 브런치 가게 ‘뷔벳’도 ‘뷔벳 서울’이란 명칭으로 올 상반기 국내 진출을 준비 중이다. 파리, 런던 등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은 전 세계 6번째 매장이다. 해외여행 명소로 유명세 타며 ‘응(%)커피’란 별명을 가진 일본 아라비카커피도 한국 시장 진출에 가세했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국내 1호점 자리를 물색 중’이라고 밝히며 국내 진출을 예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글로벌 외식 업체들이 한국에 들어오며 꺼내든 공통 전략은 ‘고급화’다. 유독 국내 시장에서 이어지는 고급화 전략을 두고 업계에선 ‘비쌀수록 잘 되는 한국 시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년여 전 처음 들어온 미국 랜디스 도넛은 클래식도넛 1개 기준 국내 가격이 2200원으로 현지보다 520원가량 비싸다. 이 때문에 한때 가격 논란이 일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맛집으로 인기 끌며 점포는 꾸준히 확장세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고가 음식을 두고 ‘비싸서 안 먹는다’가 아닌 ‘비싸니까 더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특히 명품대비 가격 접근성이 높은 데다 SNS 인증샷을 올리기 좋아 젊은층에게 잘 먹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는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기도 하다. 국내 진출 후 사업을 철수하는 리스크를 막고자 가격 면에서 보수적인 전략을 펴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해외 진출 시 프리미엄 이미지가 롱런하기 때문에 일부러 콧대를 높이는 경향도 있다”며 “고가 정책은 수익을 내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특히 MZ세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미식 취향이 섬세해지며 ‘맛있는 건 제값 주고 먹겠다’는 한국은 최적의 타겟이 됐다. 플래시커피 관계자는 “현재 MZ세대는 이전에 비해 고품질 커피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데다 커피를 경험하는 다양한 방법에 관심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기존 전통적인 커피 체인과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실제 고든 램지 버거의 경우 지난달 사전예약 접수 시작과 동시에 2000명이 전부 마감됐으며 이미 다음달 예약까지 완료됐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 타겟층은 프리미엄 경험을 즐기는 2030세대”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