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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대통령 부인이 잡을 권력은 없다

입력 | 2022-01-20 00:00:00

“내가 정권 잡으면 가만 안 둘 것”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인 김건희
트위터 ‘혜경궁 김씨’보다는 나을수도
특별감찰관 두고 청와대 철저 감시를



김건희 씨


기자 생활하면서 특종 한번 못했던 나는 일요일 밤 MBC를 보면서 가슴을 쳤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해 궁금했던 내용이 ‘스트레이트’에서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저 인터뷰를 내가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윤석열은 “집사람이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 가서 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고 했었다. 김건희가 걸걸한 목소리로 “권력이라는 게 무섭다”면서 정치적 분석과 판단을 술술 하는 걸 보니 그는 권력을 모르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안다. 이른바 공영방송인 MBC가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기자로부터 통화 녹음 파일을 건네받아 내보냈다는 걸. 맨 처음 소속 매체와 기자 이름을 밝혔다지만 누나, 동생 하면서 척척 오가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과연 보도될 걸 알면서 저럴 수 있나 싶으면서 김건희의 담대함에, 기자의 수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말 김건희가 눈을 내리깔고 ‘거짓 이력’을 사과할 때의 모습은 방송 속의 원더우먼 같은 목소리와 딴판이었다. 그래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연기(演技)의 중요성을 말했을 거다. MZ세대에선 ‘걸크래시’ ‘김건희에 반했다’ 같은 반응이 나오면서 심지어 후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터져 나왔다. 윤석열을 김건희로 바꿔야 한다는 거다!

방송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사적(私的)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이라며 방송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배우자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는 비판과 감시 대상이라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공교롭게도 19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이 선포됐다. 반론권 보장 등의 측면에서 이들 방송은 언론윤리 위배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이번 방송으로 김건희 인기가 되레 올라갔다며 MBC가 야당을 도와줬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미안하지만 국민의힘이 만세 부를 때가 아니다. 방송엔 안 나왔지만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김건희 발언은 섬뜩하다.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문이 유출되는 바람에 상당수 국민들이 알게 된 발언이다. 어떻게 ‘영적인’ 김건희가 언론윤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기자를 몰라보고 이런 말을 함부로 했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무리 보도되지 않을 줄 알고 발언했다고 해도 유력 대선 후보의 부인이면, ‘내 남편이’도 아니고, ‘국민의힘’도 아니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이다. 정권은 대통령 부인이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부인이 누구를 가만 안 두겠다는 것인가. 자기를 비판한 언론을 잡아넣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검경이 알아서 잡아넣는 국가가 된다는 의미인가. 그런 나라로 가자고 정권교체를 할 순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과 지배 세력만 교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18일 장영하 변호사가 공개한 음성파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형 이재선 씨가 “너 마누라 혜경궁 홍씨가 체어맨 타고 다녔다며…공무원이냐” “너 마누라가 댓글 쓴다고”라는 대목이 있다. 그 유명했던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의 소유주가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 씨임을 시사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혜경궁 김씨보다는 김건희가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안주인이 누가 되더라도 국민은 불안할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윤석열이 집권할 경우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청와대정부’ 출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청와대에는 많은 인력과 세금으로 영부인 활동을 지원한다”며 윤석열 방침이 잘못됐다고 말했으나 그렇지 않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노무현도, 역대 대통령들의 부패는 부인과 처가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사코 청와대 내부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을 두지 않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특별감찰관부터 임명하되 그것도 여성으로 임명해 대통령 부인부터 밀착 감시했으면 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보다 똑똑하다던 힐러리도 대통령 부인 때는 넘치도록 비판받았다. 선출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정치에 적극적인 대통령 부인은 미국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내조로 충분하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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