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내로남불 정권 본질적 차별화 못하면 “정권교체 지지 과반” 장벽 넘기 어려워 尹, 부인·처가 문제 완전 도려내지 못하면 무속 논란 등 악재·자살골 계속될 것
이기홍 대기자
“제 딸은 인간광우병(vCJD)으로 사망한 게 아닙니다. MBC 팀이 왔을 때도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으로 사망했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고도비만을 치료하기 위해 위장절제수술을 받았는데 예후가 좋지 않아서 사망에 이른 것입니다.”
이번 주 발간된 신간 서적들을 뒤적이다 전직 외교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37년간 통상외교 현장에서 꼼꼼히 기록한 메모들을 토대로 정리한 ‘최석영의 국제협상 현장노트’다.
책에는 2007년 한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뒤 당시 주미 대사관 공사였던 저자가 MBC PD수첩에서 인간광우병 사망자인 것처럼 소개됐던 아레사 빈슨의 모친 로빈 빈슨 씨와 나눈 대화록이 담겨 있다(책 204쪽). 모친의 발언은 MBC팀이 고의로 팩트를 왜곡했음을 입증한다.
김건희 녹음 공개가 예고됐던 지난주 이런 상상을 해봤다.
이재명 후보가 “목적은 물론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저런 방식은 진보의 가치를 먹칠하는 것”이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목적 달성을 위해선 수단의 정당성을 개의치 않는 586정권과는 DNA가 다르다. 그러므로 이재명 당선도 정권교체’라 주장할 근거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예상대로 상상은 공상으로 끝났다. 그게 이 후보의 본질이며 한계다.
김건희 녹음 파문은 윤석열 후보가 헤어나지 못하는 덫, 즉 부인과 처가 리스크의 심각성을 재확인시켜 준다.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며 희희낙락하는 야당 분위기는 보수정당의 수준을 보여준다.
안희정과 피해자 중 어느 쪽을 편드는 사람이 많은지와 관계없이, 평생 법을 집행해 왔으며 법치의 총책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당장의 유불리보다는 원칙과 보수의 품격을 중시해야 한다. 물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한 건 MBC 등 좌파언론이지만 혼잣말로 욕한 게 상대방 귀에 들어갔다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상식이다.
필자는 지난달 관훈토론회 때 윤 후보와 이 문제를 토론한 적이 있다. “평생 법을 구현하며 살아온 제가 무속에 의지하겠느냐”며 억울해하는 그의 말대로 오해와 억측, 흑색선전의 산물일 수 있다.
하지만 검찰총장 사퇴 후 첫 공개행보인 지난해 6월 9일 독립운동가 이회영선생기념관 개관식 참석 때 역술인 동행 논란부터 손바닥 왕(王)자, 이번 건진법사 건까지 빌미를 만들어왔고 대응도 석연치 않았다.
손바닥 글자를 이웃 할머니가 써준 게 진실이라면 그 할머니를 찾아서, 출입기자 대표단을 구성해 신분 비노출을 철저히 약속받고 비공개 대면을 시켜주면 됐다. 건진법사가 김건희 씨와 무관하다면 그를 추천한 인사를 공개해야 한다.
그제 김의겸 의원의 주장, 민주당의 신천지 압수수색 관련 고소 내용 등을 보면 거의 이성(理性) 실종 수준이다. 가죽 벗긴 소 제물 사진 등 자극적 요소도 총동원된다. 그 끔찍한 행사를 주관한 단체의 핵심 간부가 민주당 4050위원회 종교본부에서 임명장을 받았다는 보도는 여당의 확성기와 김건희의 도사 발언이 어우러진 사운드 임팩트에 묻혀 버린다.
녹취록에는 오빠도 언급된다. 야권에서 오래전부터 우려가 제기됐던 존재다. 정치권에는 “장모가 (사위의) 20대 지지율이 낮아 속상해한다”며 장모에게 내밀 전략을 묻고 다니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부인이나 처가 끈을 잡으려는 파리떼가 여전한 것이다.
이런 종양들을 도려낼 방법은 명료하다. “5년간 아내는 배우자로서의 역할 이외 그 어떤 것도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처가 식구들은 퇴임 때까지 청와대 출입을 일절 금지시킬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폐업시킨) 특별감찰관을 대폭 강화해 처가 식구들의 호가호위는 물론 이들에게 접근하거나 편의를 봐주는 행위에 철퇴를 가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부인과의 연결고리로 들어온 모든 인사를 쳐내야 한다.
이재명 앞의 장벽 중 욕설, 전과, 대장동 등은 본인이 어쩌기 힘든 절대적 조건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장애물인 ‘정권교체 여론’은 586정권과의 본질적 차별화 의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윤석열이 마주한 부인과 처가 리스크도 의지와 결단에 달렸다. 어느 쪽이 더 단호하게 자기 내부의 장벽을 넘어설지에 승패가 걸렸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