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끝에 숨진 박옥순씨 언니 뒤이어 23년前 신장 기증 “흔들림 없이 끝까지 나누는 삶”
2009년 9월 고 박옥순 씨(왼쪽)와 언니 옥남 씨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개최한 장기기증의 날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3년 전 가족도 지인도 아닌, 생면부지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던 박옥순 씨(70)가 3일 암 투병 끝에 숨지며 경희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했다고 20일 밝혔다.
박 씨가 20대 여성에게 신장을 기증한 것은 1999년. 언니 옥남 씨(76)가 앞서 1993년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하자 박 씨도 선뜻 기증을 결심했다. 옥남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올리며 “동생과 내 허리에는 신장 기증 당시 생긴 20cm 크기 흉터가 나란히 있다”며 “기증 수술 뒤 아픔이 가시니 나눌 수 있다는 감사함이 더 크게 다가왔었다”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자매가 함께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해 ‘순수 기증자’가 된 사례는 이들이 처음이다.
옥남 씨는 “어머니께서 암으로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시고 이듬해에는 가까운 교회 교인이 17세 딸을 심부전으로 잃었다. 연이어 죽음을 경험한 뒤에 장기기증운동본부의 캠페인을 접하니 ‘나도 기증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기증하고 나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걸 본 동생이 ‘기증을 하고 싶다’며 방법을 물어왔다”고 말했다.
옥남 씨는 “동생이 신장 기증을 결심했을 당시 ‘수술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말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동생은 ‘아프지 않고서 누굴 살리겠느냐’면서 오히려 나를 설득했다”며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일에는 한번 결심하면 흔들림이 없던 동생은 끝까지 나누는 삶을 살고 오빠와 어머니 곁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