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매체 “신뢰구축 조치 전면 재고… 중지했던 모든 활동 재가동 검토”
바이든 취임 1년 맞은 날 美 겨냥, 핵실험-ICBM 시험발사 재개 시사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좌초 위기
북한이 20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잇단 미사일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이 2018년 4월 북핵 모라토리엄(중단) 선언 후 봉인해 둔 대량살상무기 카드까지 꺼내 들 수 있다고 위협하고 나선 것. 북한이 남북관계 ‘레드 라인’으로 꼽히는 핵실험 재개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4년간 이어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만 남긴 채 좌초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우리가 선결적·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노동당 정치국 회의 내용을 전하며 이같이 밝힌 것. 북한은 재가동 활동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2018년 모라토리엄 선언 후 북한이 쭉 ‘선의 조치’라고 주장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핵실험 및 ICBM 발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신은 또 “싱가포르 조미(북-미) 수뇌회담 이후 우리가 정세 완화의 대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인 성의 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묵과할 수 없는 위험 계선(경계를 나타내는 선)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한미 연합훈련 및 미국의 대북제재 조치 등도 싸잡아 비난하며 이번 경고가 이날로 취임 1년을 맞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직접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실제 4년 만에 핵·ICBM 모라토리엄 선언을 깨고 행동에 나선다면 여러 발의 핵탄두를 싣고 미 전역 동시 타격이 가능한 ‘신형 고체연료 ICBM’을 들고나올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북한이 열병식 등에서 공개한 세계 최대 규모의 화성-17형 ICBM 발사나 기습 핵실험 역시 가능한 도발 시나리오로 꼽힌다. 북한은 지난해 2년 반 만에 영변 5MW 원자로도 재가동한 바 있다. 정부 소식통은 “전술핵무기나 신형 ICBM에 장착할 초대형 핵탄두 개발을 하려면 추가 핵실험부터 필요하다”며 “핵 실험장 재건 등 북한의 후속 조치 징후를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北 “중지했던 활동 재가동”… 신형 고체연료 ICBM 도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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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미연합훈련-대선 전후로 신형 ICBM-전술핵 실험 나설수도 북한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년에 맞춰 대미(對美) 비난을 쏟아내며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중단)’ 폐기를 시사했다. 고강도 전략 도발의 시계가 다시 째깍거리기 시작한 것. 3월 한미 연합훈련과 대선(大選) 등을 겨냥해 북한이 핵·ICBM 도발에 나설 경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북-미 관계도 강대강(强對强) 전면 대결로 회귀한다.
북한은 20일 “우리가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마지막 전략 도발은 2017년 9월의 6차 핵실험과 그해 11월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화성-15형’ ICBM의 시험발사였다. 2018년 4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ICBM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로는 단거리미사일만 쐈다. 신형 ICBM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열병식 공개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북한이 4년 만에 핵·ICBM 모라토리엄을 철회할 경우 더 강력하고 진전된 핵·ICBM 무력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년 초 개발을 공언한 초대형 핵탄두와 전술핵, 고체연료 ICBM의 실전 테스트로 대남·대미 핵타격력의 고도화를 입증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6차 핵실험과 화성-15형을 쏜 지 5년이 지난 만큼 관련 기술을 더 발전시켜 이제는 김 위원장이 지시한 전략무기 개발이 막바지 단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경고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우선 여러 발의 핵탄두를 싣고 뉴욕과 워싱턴 등 미 전역의 주요 도시를 동시 타격할 수 있는 신형 고체연료 ICBM 도발이 예상된다. 화성-15형 등 액체연료 ICBM처럼 사전 연료 주입 과정 없이 명령과 동시에 쏠 수 있는 고체 다탄두 ICBM은 미국엔 북핵 위협의 ‘마지노선’과도 같다. 또 2020년 10월 당 창건 열병식에서 선보인 세계 최대 규모의 화성-17형 ICBM 시험발사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다종다양한 핵실험 가능성도 농후하다. 미-중-러 등 주요 핵강국처럼 1발로 도시 한 곳을 날려버리는 Mt(메가톤·1Mt은 TNT 100만 t의 폭발력)급 핵탄두를 공개할 수 있다. 또 극초음속미사일·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에 장착할 수 있는 수kt(킬로톤)급 전술핵의 성능 시험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또다시 ‘벼랑 끝 전술’에 나선 것은 북핵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이란 핵합의 협상 재개 등 다른 외교 현안에 집중하면서 북한과는 대화 재개를 놓고 줄다리기만 하는 상황을 김 위원장이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 북한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이자 미국이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공개 회의를 요청한 시점에 맞춰 이번에 핵·ICBM 도발 으름장을 놓은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경고를 행동으로 옮길 시점과 관련해선 각각 광명성절(2월 16일)과 태양절(4월 15일)로 불리는 김정일 김일성 생일을 주목한다. 북한은 앞서 2013년 광명성절을 나흘 앞두고 3차 핵실험을 하는 등 굵직한 핵·미사일 도발을 두 기념일을 전후해 집중한 바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각각 올해 80주년, 110주년인 김정일 김일성 생일 전후와 그 사이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 도발의) 중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남한 대선(3월 9일)을 겨냥해 그 전에 신형 무기 점검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남한 여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경우 대남(對南)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한국담당 국장은 동아일보에 “김 위원장이 대미 협상에 나설 시 북한 미사일 역량이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