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20회 이상 불법촬영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경찰이 불법촬영물을 분석하면서 피고인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 위법수집증거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3~4월 경기 수원시와 안산시에서 여러 피해자들을 상대로 24회에 걸쳐 불법촬영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은 이 사건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A씨가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 2대를 확보해 분석했고, 이를 통해 A씨가 2018년 3~4월 불법촬영을 20회 이상 저지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수사하던 같은 해 3월 화장실에서의 불법촬영 혐의에 관한 사진이나 동영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은 해당 불법촬영물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A씨를 참여시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피의자신문을 거쳐 A씨가 기소됐고, 검찰은 해당 불법촬영물을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다.
수사기관은 최초에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혐의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있는 증거만 압수할 수 있다. 압수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선 피압수자나 변호인에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형사소송법 원칙과 대법원 판례다.
1심과 2심은 경찰이 확보한 불법촬영물은 애초에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의 혐의사실과 객관적 관련성이 없는 점, A씨에게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임의로 분석을 진행한 점을 이유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우선 재판부는 경찰이 발견한 불법촬영물과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 간 객관적 관련성은 인정된다고 했다. 경찰이 수사하려던 A씨의 범행이나 불법촬영물의 촬영 일시 등이 근접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찰이 휴대전화에서 불법촬영물을 탐색·복제·출력하면서 A씨에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으므로 해당 불법촬영물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A씨가 수사단계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압수절차의 위법성을 다투지 않았다거나, 영장 혐의사실과 비교해 범행 방법이 동일해 방어권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등의 사유만으로는 위법수집증거라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