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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빠른 날림공사에 불법체류자 투입 ‘공공연한 비밀’

입력 | 2022-01-23 08:25:00


 국내 상당수 건설현장에서 재하도급 업체들이 공사단가를 맞추기 위해 인건비가 낮은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부실공사와 안전사고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되고 있다.

불법체류 외국인들은 신분이 불안전한 탓에 안전이나 공법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속도전 공사에 투입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부실 시공의 단초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지난해 건설근로자 수급 실태와 훈련수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건설노동자 31만6380명 중 불법 체류, 즉 신분상 불법 노동자는 27만9022명으로, 비율로 따지면 무려 88.1%로 추산됐다.

합법 근로자는 3만7358명으로, 방문 취업비자(H-2) 2만912명, 결혼이민 비자(F-6) 1만461명, 비전문 취업비자(E-9) 5985명 등이다.

국내 건설업계에서 불법체류 노동자 고용은 오랜기간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 공사 단가는 하도급에 2, 3차 하도급을 거치며 점차 내려간다. 시공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하도급 업체들은 공사 단가를 맞추기 위해 내국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불법 체류자의 경우 신분상 약점(결함) 탓에 합법적 외국인보다 훨씬 밑도는 평균 일당을 받고 일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문제는 불법체류 신분을 이용해 이른바 ‘속도전’과 부실 시공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공사기간 등이 촉박한 건설사들의 경우 지상층 공정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투입해 빠른 속도로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곁같은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상층의 경우 같은 구조의 형틀을 연달아 찍어내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한 지하층과 달리 단순작업이 가능해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투입된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는 법정 근로시간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 속도전 공사가 집중 투입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체계적인 시공교육과 기본 안전교육도 부실한 실정이다.

타설작업의 경우, 레미콘을 적정한 양으로 분배해 무너지지 않도록 고르게 펴는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 국적 노동자 A씨는 “인부들은 별다른 시공교육 없이 반장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며 “기술은 같이 일하는 사람을 따라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일반 노동자들은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받은 뒤 일을 시작하지만 불법체류자의 경우 신분을 숨기기 위해 안전교육 참여를 기피하기도 한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은 “외국인 건설공사현장에선 일당제보다 콘크리트 구조물 한 판을 완성한 뒤 임금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무조건 빨리 완성하는 것이 이득인 구조다. 이런 임금 체계가 속도전에 적합할 수 있지만,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고 설명했다.

우지영 행정사는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H-2, E-9 비자를 받아 팀을 꾸려 조직을 운용하게 끔 돼 있다. 그러나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 불법체류자들은 4대 보험·공사 자격증·안전교육 등 여러 법 테두리와 체계를 비켜가 부실 시공 병폐 중 하나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붕괴사고가 일어난 광주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도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콘크리트타설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붕괴 당일 39층 꼭대기에서 타설 작업을 마친 팀원 8명이 조선족이나 중국인 등 외국인으로 구성됐고, 반장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사고 현장에서는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201동 39층 옥상 타설 작업 중 23~38층 바닥 슬래브 등이 무너져 내려 사고 13일 째인 이날까지 5명이 실종된 상태다. 지하 1층 난간 사이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던 실종자 1명은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광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