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뉴욕 배경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 출간 최근 12년간 뉴욕 자주 방문해 외국인-뉴요커 등 다양하게 만나 “난 뉴욕 여행자이자 거주자였다” 편견-차별 있고 이방인 좌절 존재… “뉴욕서 생기는 미묘한 감정 다뤄”
20일 경기 파주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만난 소설가 은희경이 신작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들고 있다. 그는 “내가 보던 타인의 삶이 실제와 다를 때 벌어지는 오해를 다루고 싶었다”며 “세상을 무조건 따뜻하거나 차갑게 보지 않고 정확하게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파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소설가 은희경(63)은 최근 12년 동안 미국 뉴욕에 자주 갔다. 이곳에 사는 지인 집에서 주로 생활했는데 길게는 3개월 넘게 머물렀다. 자리를 잡으려고 발버둥치는 외국인, 인종차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뉴요커, 거리를 채운 각국 여행자들…. 그는 그리니치빌리지, 센트럴파크, 이스트강 등 뉴욕 곳곳을 걸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났다. 이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한 권의 책이 됐다. 그가 18일 출간한 연작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문학동네)다.
20일 경기 파주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만난 그는 “난 뉴욕을 방문하는 여행자이자 짧게나마 살았던 거주자였다”며 “뉴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 도시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작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4편의 단편소설이 담겼다. 그가 소설집을 낸 건 2016년 ‘중국식 룰렛’(창비) 이후 6년 만이다. 신작은 2019년 장편소설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이후 3년 만이다.
“뉴욕은 세련된 도시지만 세련된 형태의 편견과 차별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만큼 도시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이방인의 좌절도 보였죠. 이 도시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감정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뉴욕에 대한 환상과 실상을 담았다. 한국에서 계약직 회사원으로 일하는 젊은 여성 승아는 휴가를 내고 뉴욕에 사는 친구 민영의 집을 방문한다. 민영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 휘황찬란한 모습과 달리 승아가 본 그의 집은 좁고 허름하다.
“저 역시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인스타그램에 빠져 있어요. 게시물로 보는 지인들의 삶은 항상 행복해 보이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다 힘든 일을 겪고 있더라고요.”
은희경은 위악적이고 냉소적인 작품세계로 유명하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1995년),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998년), ‘태연한 인생’(2012년)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고들던 그의 시선이 신작에서는 조금 둥그스름해진 것 같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은 한국에서 도망쳐 뉴욕으로 온 작가 지망생의 내면을 차분히 전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는 주인공이 뉴욕에 함께 온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은희경은 소설을 마냥 따뜻하게 끝내지는 않는다. 서로를 오해하던 인물들이 이해의 단초를 찾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왜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조심스레 답했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요. ‘나와 너는 다르다’, ‘내가 네 마음을 몰랐다’는 마음을 지니고 서로 곁에만 있어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휴머니즘 소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