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중동 해외 순방(15~22일)을 마친 뒤 금주 중으로 신년기자회견 일정을 계획했다”며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현 상황에서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1월 18일 온오프라인 혼합 방식으로 진행된 신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DB
설 연휴가 끝나봤자 2월 3일이다. 그런데 박수현은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2월 15일부터 대통령 공직선거운동이 시작된다”고 납득 못할 소리를 했다. 2월 3일 다음이 15일이라니, 그의 눈앞에 달력을 들이대 주고 싶다.
● 기자들이 오미크론 우세종인가
문 대통령이 오미크론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신년회견을 취소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15일 무려 6박8일간 중동 3개국 순방길에 나설 때 이미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우려되는 만큼 국무총리 중심으로 방역 상황을 잘 챙기라”고 환송 나온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국민에게도 방역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었다. 올해 1월 18일 중동 순방 중 아랍에미리트(UAE)를 떠나기 직전 문 대통령을 배웅하는 UAE측 정부 요인들과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두바이=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사진공동취재단
그렇게 우려스러웠다면 중동순방을 떠나지 말고 청와대를 지켰어야 했다. 순방은 순방대로 다 하고 와서는 뒤늦게 오미크론 대응을 하겠다며 기자회견까지 취소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자들이 무슨 오미크론 변이 우세종 대마왕이라도 된단 말인가.
게다가 문 대통령은 박수현을 통해 24일 “총리가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총력 대응해 새로운 방역 치료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시까지 내렸다. 그럼 됐지 무슨 대응을 더 집중한다고 신년회견까지 취소한단 말인가. 임기 마지막 신년회견에서 나올 질문이 그렇게 겁나고 두려우신가.
● 선거관리위원회가 일어섰다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사표 반려로 위원직을 유지했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2900여명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떠밀려 재차 사표를 내고, 중동 순방 중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사표를 수리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바로 며칠 전에 벌어진 것이다. 2019년 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임명장을 받는 조해주 전 위원(위쪽 사진). 문 대통령은 당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조 전 위원을 임명했다. 야당은 임명 직후부터 문 대통령 선거 캠프 특보로 활동한 이력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왔다. 동아일보DB
▶[김순덕의 도발]‘독재자 감별법’을 아십니까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190130/93933670/1
그나마 다행이라면 1963년 선관위 설립 이래 전 직원이 조해주의 사퇴를 촉구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선관위는 살아있었던 것이다!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든, 문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설명과 사과 요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자폭을 해야 마땅하다. 그 기회를 청와대가 신년회견 취소로 원천봉쇄하고 만 것이다.
●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들
기자회견이 별것 아닌 듯해도...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다. 문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때로는 가슴이 철렁해지게 물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우파도, 좌파도 아닌 ‘시민’이기 때문이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선관위 전 직원들이 조해주 재임명에 반대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님께서는 국민 앞에 사과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기자들이,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을 독자들이 여기 아래 댓글로 달아주면 어떨까 싶다. 청와대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년회견을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싶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