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감이 동유럽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속속 선박·전투기 배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미국도 자국 병력 배치를 준비한다고 공식 거론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을 통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나토 신속대응군(NRF) 활성화 등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자국 부대에 배치 준비 강화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나토 신속대응군은 지상·공중·해상 병력은 물론 특수작전부대(SOF)를 포함한 다국적 병력으로, 위기관리와 집단 방위까지 모든 범위의 안보 문제에 짧은 시간 내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다.
커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스틴) 장관이 준비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병력 수는 통틀어 8500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치 대비 병력의) 대부분은 현역”이라고 덧붙였다.
나토가 NRF를 활성화하거나 안보 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미국이 즉각 추가 전투팀과 의료, 항공, 정보, 감시, 정찰, 수송 등 역량을 유럽에 배치할 수 있다는 게 커비 대변인의 설명이다.
이날 미국 국방부 발표는 나토 소속 국가들이 속속 동유럽 방위 역량을 증강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최근 며칠 동안 덴마크와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전투기와 선박 등 파견을 공언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나토에 추가 병력을 지원하는 동맹을 환영한다”라며 “동맹 동부 강화를 포함해 나토는 모든 동맹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말이면 통상 향하던 델라웨어 자택 대신 캠프 데이비드를 찾아 참모들과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아울러 이날은 유럽 주요 기구 및 국가 정상과 상황실에서 화상 회의도 했다.
미국 국무부는 우크라이나 현지 대사관 직원 가족에 철수령을 내렸으며,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발트해와 동유럽 지역에 자국 병력을 1000~5000명 급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했었다.
아울러 유럽 국가들은 이날 우크라이나 위기를 두고 외무장관 회의를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화상으로 참석해 지난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담판 내용을 공유했다.
EU 이사회는 이날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계속되는 위협과 공격적 행동을 규탄한다”라며 “긴장을 완화하고 국제법을 준수하며 건설적으로 대화에 임할 것을 러시아에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외교적 해결’ 기조를 여전히 고수 중이다. 커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자국군 배치 준비가 ‘외교’에서 ‘침공 대비’로 기조를 전환하는 차원인지 묻는 말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커비 대변인은 “우리가 말한 건 이전보다 더 짧은 기간 내에 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아직 그들을 배치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외교가 죽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3차 대전’에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이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을 찾는 데 진지하게 집중한다”라고 답했다.
러시아 측은 미국과 나토의 움직임에 거세게 반발 중이다. AFP,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나토의 동유럽 방위 강화 행보에 “모든 것이 긴장 고조로 이어진다”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우리는 공격적인 환경 속에 살고 있다”라며 현재 러시아의 행보를 국가 수호를 위한 “필요한 조치”로 칭했다. 또 현재 동유럽 긴장을 두고 “이 모든 건 나토, 미국이 한 일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과 유럽 주요 기구·국가 정상 간 화상 회의에서는 대러시아 제재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논의 주제로 외교, 억지, 방위 노력과 함께 제재를 거론했다.
그러나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제재 수위 등을 두고는 서방 국가들 사이에 일부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러시아가 ‘작은 습격’을 할 경우 대응 수위를 두고 싸울 수 있다고 말해 이견을 노출했었다.
이와 관련, 사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 중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오는 2월 방미한다고 밝혔다. 독일은 높은 에너지 의존도 때문에 대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