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만 관대하게 적용 ‘헬프 투 바이’로 95%까지 대출, 집 담보로 4억7500만원 가능 ‘장기 관점서 인적자본 가치 반영’… 英부동산정책서 시사점 찾을수도
영국의 부동산 정책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파격적이다. 현금 단 2500만 원만 갖고 있으면 런던 근교에 있는 5억 원짜리 단독 주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만 적용되긴 하지만, 이 집을 담보로 최대 4억75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주택담보대출(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을 통해 강력하게 대출을 막고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선 대출을 이용할 때 LTV만을 고려하고, 이마저도 관대한 기준을 적용한다. 특히 생애 최초로 신규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헬프 투 바이(Help to Buy)’라는 이름의 제도를 적용해 주택담보가치의 최대 95%까지 대출해준다.
영국 러프버러경영대 연구진이 조사한 ‘경기 주기를 고려한 이자율’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 같은 부동산 정책을 뒷받침하는 경제학적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금융기관은 개인의 소득과 신용을 담보로 인적자본의 가치를 평가한 뒤 그에 상응하는 가계 대출의 허용 범위를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호황일 때는 인적자본 가치를 과대 계상해 대출을 많이 허용해주고, 불황일 때는 인적자본 가치를 과소 계상해 돈줄을 옥죄는 경향이 나타난다.
따라서 경기가 안 좋다고 해도 무조건 움츠러들거나 대출을 막기보다는 미래 경제 확장기를 고려해 유동성을 완화하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2020년 글로벌 팬데믹으로 경기가 얼어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의 문은 활짝 열어두고 있는 영국의 경기 역행적 정책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한국도 단기적으로 경제 수축기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지금처럼 무조건 규제 정책만 고수하며 주택 구입의 길을 막아놓아서는 안 된다. 장기 시계로 보면 인적자본 가치가 과소 계상됐을 수 있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 대출을 완화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된다. 한국도 영국의 사례처럼 생애 최초 신규 주택 구입을 위한 부동산 수요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부동산 위기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박세영 노팅엄경영대 재무 부교수 seyoung.park@nottingham.ac.uk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