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24일 미군 8500명을 동유럽에 파견하기 위해 비상 대기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여 병력과 기갑전력, 미사일장비를 배치한 러시아의 침공 협박에 맞서 단호한 군사적 대응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아울러 미국은 상황이 악화되면 파병 규모를 10배로 늘릴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그간 미국은 금융·무역제재 같은 보복조치를 경고해 왔지만 그것만으론 러시아의 도발을 막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군사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비 차원의 조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래 “미국의 이익이 심대하게 위협받지 않는 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우리는 세계의 호구(sucker)가 아니다”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거부했던 전임 대통령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출구 없는 ‘전쟁의 진창’에 빠졌던 미국이다. 공화·민주 어느 행정부를 막론하고 군사적 과잉개입(overstretch)은 가장 경계해야 할 과제가 됐다. 바이든이 지난해 ‘카불의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아프간 철군을 단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막무가내 치킨게임 도전에 칼집에 넣어뒀던 군사 카드를 다시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우선순위는 외교적 해결에 있다. 미국은 조만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 러시아의 옛 소련 세력권 인정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요구 조건에 대한 서면 답변을 주기로 했다. 러시아의 턱없는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전쟁은 시작하긴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푸틴도 모르지 않을 것인 만큼 타협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폐기된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이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CBM) 복원 같은 큰 그림 속에 러시아를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