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 〈7·끝〉 노벨의학상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日 도쿄공업대 명예교수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는 술을 좋아하는 동년배 과학자 7명이 젊은 연구자를 격려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여는 ‘7인의 사무라이’ 멤버다. 도쿄공업대 제공
효모 세포를 이용한 ‘오토퍼지(Autophagy·자가 포식)’ 연구로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한 일본 생물학 권위자 오스미 요시노리(大외良典·77)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는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과학은 1000만 엔을 투입했다고 반드시 1000만 엔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각국이 현재 유행하는 분야만 집중적으로 지원하면서 기초과학을 홀대하는 풍조를 우려한 것이다.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연구의 독창성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자신 또한 1970년대부터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효모 연구를 시작해 현재 위치에 올랐다고 강조했다.》
오스미 교수는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을 확대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외길로 ‘이것밖에 없다’고 경쟁을 시키면 1등과 100등이 있는 세상이 되지만 다양한 기준이 있으면 특정 분야의 100등도 다른 분야에서는 1등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육 또한 엘리트 위주가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과 함께 어울리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재미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며 이런 지점을 잘 포착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970년대부터 약 10년간 효모의 액포(液胞) 연구를 했다. 1988년 도쿄대 교양학부 조교수가 됐을 때 독립 연구실이 생겼다. 그때 액포가 분해와 관련된 세포 내 소기관이 아닐까 생각하고 탐구하다가 오토퍼지 현상을 발견했다. 생명은 합성과 분해의 균형으로 이뤄졌다. 당시 많은 연구자들이 ‘합성’을 연구했는데 나는 ‘분해’를 선택했다.
처음 오토퍼지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은 과학자가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암, 알츠하이머병 같은 노인성 질환을 해결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토퍼지라는) 기초과학이 여러 분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효모를 계속 연구하는 게 내게 주어진 역사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노벨상 위원회는 독창성이랄까,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분야를 연구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기초과학을 하려는 사람이 줄고 있다. 얼마만큼 돈을 버는지가 중요한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 두뇌를 흡수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기초과학에서 눈을 돌리는 풍조가 있다. ‘성과가 나올 것 같으니 자금을 지원한다’고 하면 과학은 육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기초한 활동에 돈을 지원해야 한다.
5년 전 오스미 기초과학창성재단을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초과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 연구자들이 모여 재단을 설립했다. 나의 노벨상 상금 800만 크로나(약 10억 원)가 주된 재원이지만 이와 별도로 연 1억 엔(약 10억 원) 정도 수입이 있어야 재단을 운영할 수 있다. 기초과학 연구비를 지원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회활동에 그 정도가 필요하다. 현재 업무 시간의 절반을 재단 일에 쏟는 것 같다.”
“정부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유행 분야를 선택해 자금을 집중 지원한다.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차세대 연구자를 육성하기 힘들고, 새로운 과학을 탄생시키지도 못한다. 과학은 1000만 엔을 투입했다고 반드시 1000만 엔의 성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새로운 연구에 도전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것까지 다 포함해 과학이라고 불러야 한다. 훌륭한 연구는 다른 곳에서도 연구비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 재단은 지방대에서 재미있는 연구를 하지만 연구비가 부족한 사람, 정년으로 연구를 계속하기 힘들지만 꼭 해보고 싶은 독창적인 연구가 있는 사람 등을 지원한다. 연구의 재미를 이해하고, 도전하는 이를 지원하자는 취지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과학 강국이 되려면 교육도 중요할 것 같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를 보면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뛰어놀아야 ‘재미있다’는 순간이 찾아오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뭐든 더 빨리 교육시키는 것 같다. 나는 구구단을 4학년 때 배웠는데 요즘은 2학년 때 배운다. 지식을 머릿속에 주입시키는 게 다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
―사교육 문제는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심한 것 같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외길로 ‘이것밖에 없다’는 식으로 경쟁을 시키면 1등이 있고 100등이 있는 세상이 된다. 다양한 가치관이 있으면 이 분야에서 1등이 아닌 녀석도 다른 분야에서 1등이 될 수 있다.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 많은 일본 학생들이 일류대를 졸업해 일류 기업에 취직하는 걸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일류 기업에 취직해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최근 10년간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43세에 조교수, 51세에 교수가 됐다. 다른 연구자보다 늦은 것 같다.
“스포츠, 음악, 그림 등에 소질이 없다 보니 과학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줄곧 엘리트의 길을 걸어오지도 않았다. 처음 액포를 연구했을 때 동료 연구자들이 ‘저 녀석 뭐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주목받지 않더라도 착실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사람은 ‘그렇게 임팩트가 없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하나. 하하. 제자들에게도 ‘빨리 교수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교수가 되면 온갖 잡일이 생기기 때문에 연구에만 주력할 수 없다.”
그는 역시 생물학자인 부인 오스미 마리코(大隅萬里子·75) 전 데이쿄과학대 공학부 교수를 대학원 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도쿄공업대 로비의 노벨상 축하 액자 옆에 ‘너도 박사가 되자’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일본에서는 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학생이 매우 적다. 석사까지 공부하고 박사 과정은 진학하지 않는 추세다. 차세대 연구자를 육성하지 못하는 데 큰 위기감을 갖고 있다. 더 많은 박사 과정 입학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포스터에 사인했다.”
―향후 주목해야 할 과학계 동향은….
“생물학 분야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내가 연구한 효모 역시 아직 미지의 부분이 많다. 연구자들이 에너지, 식량, 환경 등 문제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사라질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 중 해외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마지막 변이가 아닐까 싶다. 인류는 코로나19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렇게 짧은 기간에 백신을 개발한 예지(叡智)를 보여줬다. 과학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청년들에게 한 말씀….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한다는 기개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는 게 중요하다. 과학이 실생활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났으면 한다. 여러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 본능에 기초해 열정적으로 연구했으면 좋겠다.”
오스미 요시노리(大隈良典·77) 명예교수는…
일본 생물학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오스미 교수는 1945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기초과학과, 도쿄대 대학원 이학(理學) 석·박사를 거쳐 1970년대부터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효모 연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오토퍼지(Autophagy·자가 포식) 현상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해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도쿄대 교수를 거쳐 현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오스미 기초과학창성재단을 설립해 후학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요코하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