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32〉스승이 남긴 말
영화 ‘아이들의 왕’에서 시골 학교 교사가 된 라오깐(왼쪽)은 말 못 하는 아버지를 대변하기 위해 공부하는 왕푸를 가르친다. 동아일보DB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 유배시절 주막집 뒷방에 서당을 열었다. 자신은 둔하다며 배우길 주저하던 아이 황상(1788∼1870)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산은 아이가 학질에 걸렸을 때 다음 시를 써주었다.
황상은 아전의 자식이었다. 병중에도 공부를 놓지 않는 제자에게 스승은 큰 기대를 걸었다. 문사(文史)를 공부해 세상만사를 꿰뚫기를 바랐다. 천카이거 감독의 ‘아이들의 왕’(1987년)에도 그런 만남이 나온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산간벽지로 하방(下放)된 라오깐은 학교에 배치돼 말 못 하는 아버지를 둔 왕푸를 가르치게 된다. 왕푸는 아버지를 대변하기 위해 사전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배운 글자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는다. 황상이 학질에 걸린 채로 흐트러짐 없이 잔글씨를 쓴 것처럼.
권력의 압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계속된다. 황상은 60년 뒤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했다.(‘壬戌記’)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